좋은시

[스크랩] [이화은] 이명

문근영 2011. 12. 20. 09:49

 

 

 이명

 

  이화은

 

 

 

나의 神은 언제나 왼쪽 귀로만 온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편애에 익숙한 그는 왼손잡이인지도 몰라

사륵 사르르

긴 옷자락을 끌며

하루도 빠짐없이 전례처럼 그가 다녀가고

내 왼 귀는 그래서 종교적이다

지극히 도덕적이다

오른 귀의 낭만과 사철 부는 바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좌우의 기류가 풀 멕인 하늘처럼 팽팽한 날

그런 날은

성난 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데칼코마니 같은 내 몸의 경계에는

반절짜리 연애가 산다

절반쯤 달려가다 돌아오고 돌아오는

슬픈 연인이 산다 그래도 모른 척 신은

왼쪽 귓속에 더 깊은 소리의 동굴을 파고

사르륵 사륵

오늘 밤도 내 왼쪽 귀는 거룩한 순교를 꿈꾸며

신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미네르바』(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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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 경북 경산 출생.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절정을 복사하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서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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