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인형
조연향
오른쪽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내게도 오른팔이 있었다는 걸 안다
나, 혹 무잡배처럼,
누구의 오른팔이 된 적도 있었고,
심장과 가장 가까운 푸른 팔손이인 양
사랑하는
너의 따귀를 후려친 적도 있지 않았던가
오른쪽이 하는 짓은
늘, 똑바른 일이라고 믿었지만
주로 내 먹이와 일상의 문장에게 바쳐진, 알량한
욕망의 쇠스랑이었을 뿐이었다
폭력과 거짓 앞에 순종하면서 순수한
네 마음을 오른손으로 받아주지 못한,
그런 죄, 밤마다 시퍼런 가시로 찔러댄다
오른쪽이 옳지 않다는 걸, 그 말씀 쓰리고
깊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고
발가벗겨진 채 버려져 있는 바비인형처럼
팍팍한 관절의 문장 속에서 헤맬 뿐,
오른쪽에 숨겨진 비밀의 힘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혜화동 건널목』(시와시학동인시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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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향 / 경북 영천 출생. 2000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제1초소 새들 날아가다』『오목눈숲새 이야기』.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서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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