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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임영조]혼자 먹는 밥-[송수권]-혼자 먹는 밥-[오인태]혼자 먹는 밥

문근영 2011. 12. 19. 08:30

혼자 먹는 밥


            임영조

 

 

외딴 섬에 홀로 앉아 밥을 먹는다
동태찌개 백반 일인분에 삼천오백 원
호박나물 도라지무침 김치 몇 조각
깻잎장아찌 몇 장을 곁들인 오찬이다


먹기 위해 사는가, 묻지 마라
누구나 때가 되면 먹는다
살기 위해 먹는가, 어쨌거나
밥은 산 자의 몫이므로 먹는다
빈둥빈둥 한나절을 보내도
나는 또 욕먹듯 밥을 먹는다


은행에서 명퇴한 동창생은 말한다
(위로인지 조롱인지 부럽다는 듯)
시 쓰는 너는 밥값한다고
생산적인 일을 해서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 이 세상 누구를 위해
뜨끈한 밥이 돼본 적 없다
누구의 가슴을 덥혀줄 숟갈은커녕
밥도 안 되고 돈도 안 되는
시 한 줄도 못 쓰고 밥을 먹다니!


유일한 친구 보세란(報歲蘭) 한 분이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서 먹는 밥은 왜
거저먹는 잿밥처럼 목이 메는가
먹어도 우울하고 배가 고픈가
반추하며 혼자 먹는 밥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2(제5시집)』(천년의 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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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송수권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생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 계간『현대문학』(2006,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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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오인태

 

 
찬밥 한 덩어리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한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눌 희망도, 서로
힘 돋워 함께 할 삶도 없이
단지 배만 채우기 위해
혼자 밥 먹는 세상


밥맛 없다
참, 살맛 없다

 


-시집『혼자 먹는 밥』(살림터, 1998)

 

출처 : 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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