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광풍루

문근영 2011. 12. 19. 01:49

 

 광풍루 정면의 편액

 광풍루 정면5칸, 측면 2칸

 

 광풍루 배면의 편액

 

 광풍루 중층 대들보위의 편액

 

 광풀루기 우암 송시열 기(宋時烈 記)  

※우암송시열 (尤庵 宋時烈) 1607(선조 40)∼1689(숙종 15). 장세남의 부탁으로 1683년 중건기 쓰다

(구판실ㅁㅁ고금중간이갈지(舊板失ㅁㅁㅁ 故今重刊而갈之)

정사사월 안의향교전교 영원백우종재판 협천이상학서(丁巳四月 安義鄕校典校 永原白祐鍾再版 陜川李相學書)

협천 이상학撰 丁巳(1917)년),

 

광풍루중수운 乙丑年夏 하영규 1865. 1925 을축년

 소문난데로 안의 갈비집이 많이 보인다. 갈비맛  KBS 한국인의 밥상

 

안의 광풍루 앞을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

안의광풍루(安義光風樓)  경남  유형문화재 제92호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49-19

정면 5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이 누각(樓閣)은 조선(朝鮮) 태종(太宗) 12년(1412) 이안현(利安縣) 현감(縣監) 전우(全遇)가 건립하고
선화루(宣化樓)라 이름지었던 것을 세종(世宗) 7년(1425) 김홍의(金洪毅)가 현재 자리에 이건하였다.

그후 성종(成宗) 25년(1494) 안의현감(安義縣監) 정여창(鄭汝昌)이 이를 중건하고

 

광풍루(光風樓: 빛을 실어 전국에 골고루 나른다는 큰 뜻으로
만백성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 위아래가 없는 나라, 백성이 곧 주인이되는 나라. 

백성들의 고통이 곧 세금에 있음을 알고 백성이 마땅히 편하게 살아야할 10가지 규칙이 편의수십조(便宜數十條)이다)라

개칭하였는데,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불에 탄 것을 선조(宣祖) 34년(1601) 심종침(沈宗침)이 복구하였고,
숙종(肅宗) 9년(1683)에 장세남(張世男)이 중건하였다.
1980년 안의면 소도시 가꾸기사업으로 정비와 동시에 보수되었다.

 

광풍루 옆에는

상무좌우사접장 하경순포선불망비(商務左右社接長 河璟詢褒善不忘碑碑 와 의병대장문태서기공비(義兵大將文泰瑞紀功碑)가 있다.

 

※안의면 소재지에는 갈비집이 즐비하여 지나가면 갈비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국일식당 갈비찜과 갈비탕은 KBS방송 한국인의 밥상에 소개되기도하였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산사로의 여행
글쓴이 : 木 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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