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길상호]헐렁한 팬티

문근영 2011. 12. 16. 21:04

헐렁한 팬티


               길상호

 

  나는 팬티를 파는 남자, 좌판에 꽃무늬 망사 끈 팬티 늘어놓고서, 저기 아저씨! 옆의 여자분 팬티 좀 사드리세요, 내가 파는 팬티는 사준 사람만 벗길 수 있는, 밤마다 싸고 또 싸게 만드는 팬티, 싸다 싸 세 박스 만원~, 꽃무늬는 여인에게 바치는 꽃다발, 망사는 여자를 건져올리는 그물, 끈은 두 사람 하나로 묶는 인연, 쑥스러워 할 거 뭐 있나, 사세요 사, 사람 드문 골목 모퉁이 찢어진 가로등 불빛을 걸치고 , 나는 팬티를 파는 남자, 척보면 척, 누구 속이 까만지 누구 속이 하얀지 누가 큰 사람인지 누가 작은 사람인지 다 알지 허풍을 떨다, 어둠도 잠이 든 밤 리어카 좌판에 늘어놓은 말들을 챙겨, 침묵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한때 당신이 오래 입다 버려진 남자.

 

 

―시집,『눈의 심장을 받았네』(2010, 실천문학)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