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다
박라연
철새 도래지에서
살얼음 걷듯 걸어갔는데
그저 눈빛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거처를
밥을 버리고 사라져버린다
행복한 공양 시간을 폭격한 저격수가 된 것이다
천지가 빽빽한 이별이 진공이 되어
온몸을 휘감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백성처럼 많은 새들 중 한 마리에게
꽁꽁 언 인연 하나 모이처럼 던져주면
새의 따뜻한 입속에서 녹아내리기를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아픈 인연 하나 모이처럼 던져주면
그 인연 품고 날아오르기를
주문처럼 외고 또 외는데
평생을 떠돌다
생(生)을 마감하는 철새들에게
인연은 너무 큰 부재라는 듯
난감한 듯
날아가 오지 않는다
-시집 『우주 돌아가셨다』(랜덤하우스중앙, 2006)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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