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박라연] 들키다

문근영 2011. 12. 16. 20:58

들키다

 

 

 

박라연

 

 

 

철새 도래지에서

살얼음 걷듯 걸어갔는데

그저 눈빛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거처를

밥을 버리고 사라져버린다

행복한 공양 시간을 폭격한 저격수가 된 것이다

천지가 빽빽한 이별이 진공이 되어

온몸을 휘감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백성처럼 많은 새들 중 한 마리에게

꽁꽁 언 인연 하나 모이처럼 던져주면

새의 따뜻한 입속에서 녹아내리기를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아픈 인연 하나 모이처럼 던져주면

그 인연 품고 날아오르기를

주문처럼 외고 또 외는데

평생을 떠돌다

생(生)을 마감하는 철새들에게

인연은 너무 큰 부재라는 듯

난감한 듯

날아가 오지 않는다 

 

 

 

 

-시집 『우주  돌아가셨다』(랜덤하우스중앙, 2006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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