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문양
윤의섭
빗방울이 떨어질 때까지의 경로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최단거리를 달려왔을지라도 평생을 산 것이다
일설에는 바람의 길을 따라왔을 거라고 한다
해류를 타고 흐르는 산란인 듯
어디에 안착한다 정해졌더라도 생식할 가망 없는 무정란인 듯
구름의 영역 너머로 들어선 빗방울은 추락하지 않는 달을 본다
스스로의 길을 따라 휘도는 성운을 본다
귓전을 가르는 바람소리 속에서도 궁륭 가득 흐르는 神律을 들으며
빗방울이 어떻게 미쳐갔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살점을 떼어내며 살생의 속도로 치달리는 운명이란
길을 잃고 천공 한가운데서 산화하거나
영문도 모른 채 유리창에 머리를 짓찧고 흘러내리거나
하늘길 지나오면서는 같은 구름의 종족과 몸을 섞기도 했다
나란히 떠나왔던 친구는 어느 나무 밑동에 뿌려져 이미 잠들었다
발을 디디고서야 빗방울은 최초로 신음한다
이 기나긴 침묵으로 흐린 하늘 가득하다
구름으로부터 그어진 무수한 여정으로 흐린 하늘 슬프다
오직 고요의 춤만이 허락된 비행으로 흐린 하늘 눈부시다
지상을 적시며 빗방울은 비로소 몸을 묻는다
천구를 가로질러온 경로다
『딩아돌하』(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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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 / 1968년 경기도 시흥 출생. 아주대학교 국문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마계』.
출처 : 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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