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가 한 일
이재무
강물 내려다보이는 연초록뿐인 언덕 위의 집
홀로된 노인 과실수 한 그루 구해 심으니
바람 몰려와 우듬지 흔들다 가고 햇살 잎잎마다 매달려 잉잉거린다 가지 끝 대롱대롱 빗방울 무수한 벌레들의 남부여대 껍질 속 세 들어 살고 꽃 피자 벌 나비 붐비고 구름 커튼 두껍게 그늘 치고 불콰한 노을 귀가에 바쁜 걸음 문득 멈추게 하고 이슬 내린 밤 열매의 소우주에 둥지 틀다 가는 별과 달
나무 한 그루 불쑥 들어선 이후
강물 눈빛 더욱 깊어지고
갑자기 살림 불기 시작한 언덕
부산스레 허둥대기 시작하였다
-시집 『경쾌한 유랑』(문학과지성사, 2011)
▶이재무=1958년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섣달 그믐' '몸에 피는 꽃' 등.
**다투어 피워올리는 꽃들 향연에 넋 놓고 있는 사이, 나무의 맨몸에선 꼬물꼬물 연초록 새잎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엔 손톱 만하던 고것들이 어느새 자라나 손바닥 만해졌을 때, 나무는 그동안 텅 비어있던 우주의 여백을 채우는 한 그루 성자가 되시었다. 나는 그동안 아기 손톱만큼이라도 누군가의 여백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제 할 일 다 하며 묵묵히 한세상 건너는 나무들 앞에 부산스레 마음만 허둥대보는 아침이다. 고증식·시인
- 국제신문 [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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