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황인숙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내 좁은 방.
-출처 :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2011.6.4)
*만해의 유명한 시와 제목이 같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이 진지한 시를 넋 놓고 읽어보자.
그리고 그 얼굴 그대로 이 시를 읽자.
골똘한 표정과 멍한 표정은 데칼코마니 같다.
'표정'이라는 얇은 지층 너머를 생각할 수가 없어서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는 건 보이는 것 너머를 본다는 뜻이다.
혹은 그 반대이기도.
별을 보다가 우물에 빠졌다던 그리스 철학자처럼
우리는 현상계 너머를 생각하다가 바보처럼 현상액 속에서 인화되고 말았다.
보르헤스는 최고의 미로를 사막이라고 했다
빠져나갈 길 자체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걸 바다라 부른다.
길이 증발해버렸기 때문이다.
방문 여는 게 항로 개척만큼이나 어렵다.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시 읽기 : 권혁웅 시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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