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다산 묘소에서 / 박석무

문근영 2011. 3. 17. 09:10



297
 
 

다산 묘소에서


지난 4월 7일은 다산선생이 세상을 떠난 1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762년 6월 16일에 티어나 다산은 1836년 음력 2월 22일에 운명하였으니 그날은 양력으로 4월 7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 마을의 다산 유적지를 찾았고 생가이던 여유당(與猶堂) 뒷동산에 자리한 선생의 묘소에서 묘제(墓祭)를 올렸습니다.

다산은 부인 풍산홍씨와 함께 170년 동안 거기에 누워 계시며 아직도 당신의 꿈이 이룩되지 못한 사바의 혼탁한 세상을 바라보시며 안식을 누리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묘제문(墓祭文)을 올렸습니다. “아! 우리 선생은 세상에 보기 드문 큰 선비로 가이 없는 학식과 더 넓은 경륜으로 임금을 보필할 계책을 지니셨기에 애초에 그 경륜을 시험하자 빼어난 식견이 세상에 널리 펼쳐졌습니다…”( 我先生 間世大儒 博學鴻綸 可佐王圖 初試牛刀 美玉見 …)라는 글을 올리고 주과(酒果)를 바쳐 일세의 탁월한 학자에 대한 숭모의 정을 표했습니다.

지금부터 70년 전인 1936년 4월 7일은 다산의 서세 100주년인 날이었습니다. 당대의 민족 지도자들인 위당 정인보, 민세 안재홍, 만해 한용운, 고하 송진우, 인촌 김성수 등 44명의 위원들이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구성하여 대대적인 다산학의 홍보와 보급에 나섰고 1938년에는 마침내 그분들의 노력으로 76책의 거대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가 활자로 인쇄되어 세상에 얼굴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 게재된 발기취지문에는 “조선사상 태양적 존재인 다산선생의 위업을 추모하기 위하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때로부터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분은 역시 이 나라 이 민족의 태양적 존재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한 학문, 그만한 경륜, 그만한 위업을 이룩한 분이 우리 역사상 누가 있는가요.

묘제를 올린 다음, 우리는 ‘실학산책’이라는 첫 번째 행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실사구시적 다산의 실천논리를 이 땅에 실현하여 참으로 깨끗한 세상을 만들자면서 그날 모인 다산을 흠모하는 500여 명이 묘소 앞에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짐을 했었습니다. ‘실천! 실사구시!’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