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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뜻을 말함이다(詩言志)’라는 말은 시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입니다. 시란 예술은 자신의 속마음을 말로 표현한 문학의 한 장르라는 뜻일 것입니다.
경학자(經學者), 즉 높은 수준의
철학자이자 뛰어난 정치와 경제의 학자이던 경세가(經世家)로서의 다산이었지만, 하고 싶은 말씀이 정말로 많았던 탓인지 무척 많은 시를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문집에 실려 현재까지 전해지는 시만 해도 2500여수가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강과 산,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그림처럼 묘사하는
사경시와 서정시도 많이 지었지만 탐관오리들의 착취에 시달리던 참담한 백성들의 참상도 정말로 리얼하게 읊었던 시가 많습니다.
1980년 5·18의 무도한 계엄군의 양민학살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현상수배되어 여러 달을 잠행했던 저는 무서워 불안과 초조에 마음
졸이던 시절, 다산의 ‘애절양’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이런 다산의 뜻을 알리지 않고서 그냥 죽을 수 없다는 마음에서 충분한 실력도 없으면서
다산시를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던 기억이 납니다. 노트에 그냥 그냥 베껴두었다가, 1982년 봄에 교도소에서 출옥하자 다시 손보고 정리해서
서울의 ‘시인사’라는 출판사에서 100편이 조금 넘는 시를 묶어 다산시선집 『애절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옛날 이래 사내가 남근 자른다는 말 못 들었네. / …부호들은 1년 내내 풍악울려 즐기지만 / 쌀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더구나. / 너나 나나 한 백성인데 어찌하여 후하고 박한거냐. / 나그네 여관방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우네.”
2500수가
넘는 시중에서 대표적인 사회시로 여겨 제목까지 그 이름으로 출간했던 것입니다. 『목민심서』에도 다산은 이 시를 인용해서 실으며, “이 시는 내가
1803년 가을 강진에서 지은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악에 받힌 백성이 이런 변고를 일으키는 일이 있으니 매우 불행한 일이다.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닌가”라고 첨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군정(軍政)의 문란으로 아이들 숫자에 따라 세금을 물리자 견디지 못한 백성이 아이 그만
낳기 위해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분노한 마음을 시로 읊었던 다산, 무재자(無財者)를 거들어주어야 한다는 그의 시관(詩觀)과
일치하는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정부패에 진저리나던 조선 후기의 삼정(三政) 문란을 한 편의 시로 질타한 통쾌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단한 시인이었습니다.
추신 : 오늘로 「풀어쓰는 다산이야기」가 300회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부족함 많은 글을 계속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더 연구하고 찾아내서 의미 깊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도편달과 꾸중도 해주시지만 격려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석무 올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300회 기념 행사 박석무 이사장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가
오늘로 30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300회를 기념하는 작은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다산’ 또는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에 관해 여러분의 글을 5월 16일까지 보내주십시오. 어떠한 종류의 글이라도 좋습니다.
참여하신
분 가운데 약 30분을 추첨해 『풀어쓰는 다산이야기』(문학수첩, 2005)를 드립니다. 또한 앞으로『풀어쓰는 다산이야기』2권이
출간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신 글은 귀중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보내주실 곳 staff@edasan.org 팩스 02) 545-1694 (팩스로 보내실 경우, 성함과 이메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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