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고려청자기에 담은 수선화 / 박석무

문근영 2011. 3. 13. 11:06



299
 
 

고려청자기에 담은 수선화


영국의 유명한 시인 워즈워드는 지천으로 피어나던 ‘수선화(daffodil)’를 시로 읊어서 수선화가 서양에서는 유명해진 꽃이 된 지 오래입니다. 김소월의 ‘진달래’시가 유명해지면서 진달래꽃도 덩달아 유명해진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다산과 추사 김정희와의 관계는 전에도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만, 그들이 언제 어떻게 만났고 얼마나 자주 만나서 얼마나 화락한 시간을 보냈는지는 기록에서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여유당전서』에는 다산이 추사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 하나가 실려 있으나 어느 때 보냈는지는 짐작할 길이 없습니다. 바닷물이 들고 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추사의 질문에 답한 내용일 뿐, 그들의 인간관계를 살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는 무자(戊子:1828)년 67세이던 다산이 추사의 아우 김상희(金相喜)와 다산의 고향마을 근처 한강의 남자주(藍子洲)에서 배를 타고 놀면서 지었다는 시가 있습니다. 날짜까지 5월 5일이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날짜의 기록은 없으나 그러던 무렵의 어느 날 추사가 평양에서 다산에게 수선화를 선물로 보냈는가 봅니다.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金魯敬)이 평안감사를 역임한 때가 아마 그 무렵인가 싶은데, 「늦가을 김정희 벗이 평양에서 수선화 일본(一本)을 부쳐왔다. 그런데 그 화분은 고려 때의 오래된 그릇이었다(秋晩金友喜香閣寄水仙花一本其盆高麗古器也)」라는 제목도 긴 시였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말만 꺼내면 읊어대는 시가 바로 그 시입니다. 추사가 다산을 얼마나 존경하고 숭모했으면 고려청자기에다 수선화를 심어서 선물로 보내겠느냐라는 것이 유교수의 논리입니다. 수선화라는 꽃이 그래서 또 유명한 꽃이 되는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자주 만나고 접촉이나 대화가 많았나는 기록으로 증거하기는 어려우나, 추사의 문집에도 다산에게 올린 장문의 편지가 한 통 있고, 뒷날 두릉(능내)까지 추사가 찾아가 다산의 아들인 정학연·학유 형제들과 놀았다는 기록이 확실하니, 당론이 다르고 고경(古經)에 대한 해석에서 큰 차이가 있었지만 추사는 분명 다산을 참으로 존경하고 숭배했다는 것을 고려자기 수선화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300회 기념 행사

박석무 이사장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가 4월 17일로 30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300회를 기념하는 작은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다산’ 또는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에 관해 여러분의 글을 5월 16일까지 보내주십시오.
어떠한 종류의 글이라도 좋습니다.

참여하신 분 가운데 약 30분을 추첨해 『풀어쓰는 다산이야기』(문학수첩, 2005)를 드립니다. 또한 앞으로『풀어쓰는 다산이야기』2권이 출간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신 글은 귀중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보내주실 곳
staff@edasan.org
팩스 02) 545-1694 (팩스로 보내실 경우, 성함과 이메일을 명기하여 주십시오.)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