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詩 당선작

[스크랩] 2011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문근영 2011. 1. 5. 14:03

2011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어떤 소믈리에--강 혜 원

 

 

모든 라벨은 사심이 없지

한결같이 청렴하다네

나 또한 사심 따윈 없으나 무료한 나의 혀는 미지의 회오리를 원하네

 

이를테면 미 개봉 중고를 견디며

숙성과 산화와 변질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누설하지 않은 갸륵한 맛

누대에 걸쳐 고단한 오크통을 미워하면서, 미워하지 않으면서

절치와 부심을 곱씹은 병속의 태풍

태풍 속 부릅뜬 외눈 같은 맛

 

제품명- 언젠가는

생산년도 - 잊힌 지 오래

원산지- 산비알 자드락 젖은 눈시울 밭

맛- 대대로 농축된 옹이 깊은 맛

특징- 어딘가에 스밀 수만 있다면 드라이하게 굴욕을 견딜 수 있음

 

맨 아랫간 먼지 쌓인 와인 병의 바디를 껴안듯 닦아 주었네

이윽고 마개가 열리고

아 적빈의 이토록 깊은 빛깔에 사로잡힌 사이

시큼을 벗고, 놓쳐버린 새콤과 상큼을 획복하려는 눈물겨운 심호흡

 

나는 가장 전문가다운 표정으로

펑펑 축포를 쏘듯 두서없이 웃는 17번 테이블의 브이아이피

오래 묵은 귀빈에게

함부로 묵혀진 이의 비밀을 청아하게 따르려하네

 

세상의 모든 단맛으로부터 격리된

빈 달빛 비탈진 귀가길

자꾸만 들러붙는 허기의 잔가지를 쳐내며

수도 없이 외치고 삼켰을 형언할 수 없는 이 맛을

 

*소믈리에:손님이 주문한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주는 와인 감별사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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