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詩 당선작

[스크랩] 201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문근영 2011. 1. 3. 11:17

201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새장--강정애

 

 

나무 밑 떨어진 이파리들은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신었던 흔적이 있다

 

낡은 그늘과 구겨진 울음소리가 들어있는 이파리들

 

나무 한 그루를 데우기 위해

 

붉은 온도를 가졌던 모습이다

 

저녁의 노을이 모여드는 한 그루 단풍나무 새장

 

새들이 단풍나무에 가득 들어 있는 저녁 무렵

 

공중의 거처가 소란스럽다.

 

후렴은 땅에 버리는 불안한 노래가 빵빵하게 들어 있는

 

한 그루 새장이 걸려 있다

 

먼 곳을 날아와 제 무게를 버리는 새들

 

촘촘한 나뭇가지가 잡고 있는 직선의 평수 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후드득, 떨어지는 새들의 발자국들

 

모든 소리를 다 비운 새들이 날아가는

 

열려 있으면서 또한 무성하게 닫혀 있는 새장

 

허공의 바람자물통이 달려 있는 저 집의

 

왁자한 방들

 

잎의 계절이 다 지고 먼 곳에서 도착한 바람이

 

그늘마저 둘둘 말아 가면

 

새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새의 혀들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의 혓바닥들만 부스럭거릴 것이다

 

모두 그늘을 접는 계절

 

간혹, 지붕 없는 새의 빈 집과

 

느슨한 바람들만 붙어 흔들리다 간다

 

한 그루 단풍나무가 제 가슴팍에 부리를 묻고 있는 저녁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는 나무의 귀

 

누군가 새들의 신발을 주워 책갈피에 넣는다.

출처 :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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