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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 (KASIT)에서는 서남표 MIT 석좌교수의 제 13대 총장 취임식이 열린다. 서남표 신임총장은 이미 미국에서 학문적으로나 학교행정 면에서 충분히 능력이 검증된 학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KIAST 의 발전을 위해서 크게 기여하리라는 기대가 크다. 서남표 총장에게 주어진 숙제가 결코 간단하지는 않다. 가장 크고 중요한 숙제는 4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KAIST를 국제적으로 수월성을 인정받는 이공계 교육연구기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임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숙제에 도전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현안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러프킨 개혁 좌초와 2년 만의 중도하차 우선 전임 러프린 총장의 재계약 여부를 놓고 빚어졌던 갈등으로 어수선해진 학내외 분위기를 수습하고, 특히 많이 손상된 교직원과 정부와의 신뢰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이 급선무인 것이다. 이러한 현안이 어느 정도 정리되지 않으면 아무리 원대한 포부와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KAIST 구성원 전체의 힘을 모아 끌고 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KAIST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KAIST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결국 러프린 총장은 2년 만에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이러한 중도하차의 원인에 대하여 혹자(或者)는 러프린 총장의 독선적인 스타일 때문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과거 패러다임에 안주하는 교수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하였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소위 “러프린의 KAIST 개혁” 작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이러한 과정 중에서 KAIST 구성원과 기관이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대학의 순혈주의(純血主義)를 극복하고 ‘과학계의 히딩크’를 영입하여 한국과학기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원래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다보면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과오나 무리는 없었는지, 실패의 위험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등을 살펴보는 일은 앞으로를 위해 필요할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의 KAIST 신임 총장선임과정에서 이러한 반성과 냉철한 분석은 없었다. 지난 번 러프린 총장이 선임되었을 때, 그 분의 학문적인 업적은 탁월하지만 행정 경험은 전무하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시하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외국 선진대학은 최선의 총장후보자를 선임하기위해 총장선임위원회 (search committee)를 구성하여 몇 달 혹은 몇 해를 넘기면서까지 후보자의 자질과 비전을 철저히 점검하는데, 너무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일사천리로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KAIST 는 2년간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였다.
과학기술계의 ‘인사 무책임제(?)’, 개선되어야 그런데도 그토록 성급하게 밀어붙여 결국 실패한 정책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다시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그 원인을 심도있게 분석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인사가 대부분의 과학기술관련 정부출연연구소 기관장 선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형식적으로는 공개 모집을 통해 이사회에서 선임하게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과학기술부 등 정부 부처와 청와대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인사를 책임져야하는 사람은 전면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러프린 총장의 경우에도 실질적으로는 당시 과학기술부 장관과 청와대에서 주도했지만, 형식적으로는 KAIST 이사회에서 선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그 실험이 실패한 뒤에 실질적인 주도자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고, 형식적인 집행자는 책임을 질 의도나 그 과정을 제대로 하려는 의욕마저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인사 무책임제’ 는 앞으로 과학기술계의 발전을 위해서 필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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