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정부가 묘수를 다 짜내 보지만 집값 거품이 쉽게 빠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항간에는 정부 내의 전문가들보다 강남의 아줌마들이 더 머리가 좋기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떠돈다. 일시적으로 몇 % 하락했다는 보도가 가끔 나오기도 하지만, 그 통계가 가진 허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컨대 1억쯤 오른 아파트 값이 천 만원쯤 내린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곧 그 이상 오를테니까 그건 일종의 짧은 숨고르기일 뿐이라는 해석이 냉소적인 농담만은 아닌 듯하다.
거기다가 최근의 한 보도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담합을 통해 집값을 올리고 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얼마 이하로는 내놓지 말자고 주민들끼리 의기투합하고 주변의 부동산소개소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도 한다고 한다.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공공연히 담합 행위가 이루어져 왔고, 그것이 집값 올리기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널리 홍보되면서 집단이기주의를 불러낸 모양이다.
피해의식이 또다른 사람들의 피해의식을 상대적으로 집값이 덜 오르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담합을 통한 집값올리기라는, 치졸하지만 손쉬운 방법에 유혹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피해의식이나 불안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집값이 비상식적인 수준으로 뛰어오를 거라는 기대나 염려를 할 필요가 없는 구조적인 안전 장치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아마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피해의식이 다른 사람들의 피해의식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아직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그들의 담합행위로 인해 받을 치명적인 피해와 절망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그들에게 피해의식을 심어준 집단과 다르지 않다.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이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개인은 더러 도덕적일 수 있지만, 집단은 도덕적이기 어렵다고 설파한 바 있다. 예컨대 개인적으로 제법 도덕적인 사람도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이익 문제가 걸리면 비도덕적으로, 즉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시사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산 장수와 아이스크림 장수 아들을 든 어미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시사하는대로 이 문제에는 미묘한 대목이 있다. 누군가 이익을 본만큼 누군가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경제 논리인지 모른다. 이른바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는 것. 이익을 본 사람의 이익과 손해를 본 사람의 손해를 합하면 제로라는 산술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정도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다. 하나는, 소수의 이익 집단과 다수의 손해 집단으로 구성될 때, 그리고 그 이익과 손해의 차이가 클수록 사회가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상위 10%가 하위 90%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는 단순 속셈으로는 아무것도 정당화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양극화의 문제는 양쪽의 차이가 극심해지는 것도 있지만 그 집단의 비율이 비합리적이라는 데 있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경제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문제가 제로섬이 바탕이 된 경제 논리에 흡수될 때 세상은 그저 시장이 되고, 인간은 단지 거래하는 자가 되고, 사람을 비롯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품이 되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익을 얻기 위한 상행위가 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거래만 하는 자도 아니다.
이긴 자 싹쓸이, 일종의 집단 최면 현상 아이들에게까지 무한 경쟁 사회의 모토는 ‘많이 가진 자는 더욱 많이 갖게 되고, 조금밖에 없는 자는 그 조금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된다’에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많이 가진 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나눠주고 베푸는 것은 다음에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나눠주고 베풀려면 먼저 가져야 하지 않느냐는 투의 나무랄 데 없는, 그러나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논리가 동원된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싹쓸이한다는 생각은 수십 년에 걸친 우리 정치의 추악한 권력 게임으로부터 우리 국민들이 자기도 모르게 터득한 것이고, 역시 자기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내용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이익을 챙겨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일종의 집단 최면 같은 것이다.
반 아이들이 착한 어린이를 뽑는 투표를 했는데, 단 두 표를 받은 아이가 착한 어린이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다. 반 인원이 30명쯤 되었는데 최다 득표자가 두 표를 받은 아이였다는 것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한 표씩이고 한 아이만 표를 못 받은 것이다. 반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착해서 표가 고르게 나온 것이 아니라 한 아이만 빼놓고 모든 아이들이 자기에게 투표한 결과였다. 친구의 이름을 쓰면 친구가 상을 받게 될지 모르니까 차라리 자기 이름을 쓴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아이들을 지배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대학 입시에서 내신 성적이 중요해지면서 학생들이 잘 필기된 친구의 노트를 감춘다든지 책을 빌려 주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아파트 단지의 집값 담합과 같은 행사를 통해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출세 제일주의와 이기주의를 교육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