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두륜산 등반기 - 정홍택

문근영 2010. 11. 4. 08:08
두륜산 등산기 - 쇄놋재에서 두륜봉 까지 
 

강진을 지나 국도 55번 선을 타보라. 만덕산과 석문산 사이 계곡을 벗어나면 왼편으로 강진만과 함께 덕용산과 주작산이 함께 따라올 것이다. 월출산에서 갈라져 달마산까지 이어진 바위 많고 험한 땅끝지맥이다. 바다 가까이 이런 암릉이 있음을 보며 자연의 오묘한 섭리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산군들이라면 한번쯤 타고 싶은 바위산 줄기이다. 호남의 작은 금강산이라는 월출산에 뿌리를 두었으니 그 산줄기 또한 오죽하랴 싶다.

 

주작산을 뒤로하고 산자락을 타고 오르면 쇄놋재다. 조금 더 가면 완도를 잇는 해창만 다리가 나온다. 위봉과 투구봉이 나란히 솟아 있다. 아침 햇살에 바위 색이 따뜻하다. 단일 암괴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덩어리다. 이 고개를 넘을 때마다 입맛을 다셨던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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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입구는 쇄놋재 주유소 옆이다. 임도를 타고 들어가는 들머리야 평탄하고 부드럽지만 이것도 잠시, 표지기가 걸려 있는 등산로 입구를 들어서면 점점 경사각이 심해진다.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보일 때 쯤 바위 벼랑이 앞을 가로 막는다. 규모는 작아도 쉽지 않는 바위벽이다. 정상까지 내내 이런 바위벽과 슬랩에 붙어 힘을 쏟아야 한다. 겨우 2km도 채 못 된 거리를 한 시간 넘게 올라야 하는 작은 슬랩들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철계단 하나 없이 로프에 의지하여 오르자니 숨이 컥컥 막히고 허벅지 근육이 풀리고 장단지가 뻐근해 진다. 이런 슬랩을 오르기 위해서는 탄탄한 다리와 강한 팔심이 있어야 한다. 초심자들은 이런 슬랩 앞에 서면 호흡이 멈춰지고 가슴이 덜덜 떨리기 마련이다. 다행이도 슬랩들은 규모가 작고 경사각이 낮아 큰 어려움은 없다. 마지막 슬랩에는 가느다란 로프가 철심도 아닌 바위틈에 뿌리내린 작은 관목에 달랑 매달려 있다. 저런 줄에 의지해 수많은 사람들이 올랐을 거라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모두들 해남 군수에게 푸념을 해댔지만 그래도 시설물 없는 슬랩을 타고 오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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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올라서면 사위가 툭 터진 위봉 정상이다. 잎을 떨쳐버린 키 작은 활엽수 사이로 각진 바위 능선이 두륜봉까지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맞은편에 우람하게 솟아 있는 투구봉 너머로 물 빠진 남해 바다가 올망졸망한 섬들을 품고 있다. 해창만 다리를 건너 완도 상황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구름 낀 바다가 잿빛이다.

 

두륜봉을 향한다. 오르막 없는 능선이 내내 힘들게 한다. 날카로운 바위등을 넘고 비좁은 바위틈을 비집고 돌기도 하고 급경사를 타고 내리거나 수직 암벽 올라야 한다. 바위턱에서 앞  바위벼랑에 붙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누구나 암벽 앞에 서면 겁부터 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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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폭을 줄이며 힘들어 488봉에 올라서면 부드러운 능선길이 두륜봉까지 이어진다. 오랜만에 걷는 흙살이다. 남해안 산들이 다 그러하듯, 온통 소사나무 숲이다. 오월이면 연두색 아기 손 같은 이파리들이 반짝거리리라.

 

두륜봉 구름다리 아래 바위벽에 다다른다. 지금은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잡아주지 않으면 오르기 힘든, 오버행이 있는 가장 난코스인 곳이다. 철계단 아래 비좁은 바위벼랑을 보니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한 15년 쯤 전이나 보다. 하얀 치마저고리의 할머니 한 분이 흰 고무신을 신고 이 바위틈을 비집고 오르고 있었다. “할머니 위험하지 않으세요?” “뭘! 설악산도 가고 한라산도 올랐는데~~” 밀어주고 이끌어주며 함께 정상에 오르면서 참 지혜 없는 분이라 여겼더니 얼마 전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그램에 하얀 치마저고리에 흰 고무신을 신고 우리나라 유명산을 나르듯 오르는 할머니 이야기가 나왔더란다. 년도와 나이를 계산해 보니 어쩌면 그 할머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80이 넘었을 터인데 아직도 정정하시다니 참으로 장하신 분이다.

 

두륜봉 정상이다. 두륜산 제일봉은 맞은 편 가련봉에 자리를 내어 주고 두륜산의 상징적은 이름만 달고 있는 봉우리이다. 뒤돌아보니 위봉까지 이어진 산줄기에 바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저 험한 길을 타고 오른 것이다. 간간이 뿌린 눈발 사이로 남해 바다의 말똥 같은 섬들이 정겹다. 남서쪽으로 대둔산(도솔봉)에서 연화봉까지 산군을 이루고 서북으로 가련봉, 노승봉, 고계봉이 첨산처럼 솟아 있다. 좋은 산이다. 봉우리들은 부챗살 같이 한 곳으로 모아 그 안에 대둔사(대흥사)를 품고 있다. 명산에 대찰인 셈이다. 초의선사의 일지암과 사명대사의 표충사와 함께 널리 알려진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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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봉 허리를 돌아 만일재에서 짐을 푼다. 길게 누운 두륜봉과 수직의 가련봉이 만일재에서 손을 다정히 맞잡고 서있는 그런 형국의 자리이다. 꽃술을 날려버린 마른 억새가 쉼 없이 남해바다를 향해 몸을 누이며 서걱대고 있다. 그 좋던 억새밭이 헬기장에 쫓겨나고 사람들의 발에 밟혀 비탈 아래로 밀려 나고 있다. 만일재 억새밭도 이제는 추억일 뿐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있고 넘어야 할 산이 있고 또는 내가 가보지 못한 바위봉들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두려움이겠지만 산을 오르고 넘어야 하는 것 모두 살아 있음에 대한 확인이자 행복이고 즐거움일 터이니 우리는 다시 한 번 구두끈과 허리띠를 졸라매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것은 나에 대한 인정이며 내 삶과의 약속이어서다.

 

                                                                         2007. 11. 4    F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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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놋재에서 바라본 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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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암괴로 이루어진 투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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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벽을 타고 넘고 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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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두륜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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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봉까지 내내 이런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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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봉과 가련봉 사이의 만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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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봉은 누에처럼 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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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봉 가는길은 암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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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봉에서 두륜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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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륜봉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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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절벽으로보이는 위봉

 

들으시는 곡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의 The Power Of A Love  입니다

저의 홈페이지 '숲과 사람'(forman.pe.kr)에 가시면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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