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Re:서불과차(徐市過此)

문근영 2010. 11. 1. 07:30

 

sobul kakza 

徐市過此.. (서불기배일출(徐市起拜日出))

 

위는 탁본을 동판으로 뜬 것인데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선생이 최초로 해득했다고 하더군요..

남해 금산 부소암으로 오르는 길목의 가로 7m ,세로 4m의 평평한 암석 위에 새긴 것으로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진시황 때에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시종인 서불이 童男童女 오백여 명을 거느리고 이곳 금산을 찾아 한동안 수렵 등으로 즐기다가, 떠나면서 자기들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이 화상문자를 새겼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 각서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혹은 서불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둔 것이라고도 하며, 혹은 '서불기배일출(徐市起拜日出)'이라는 여섯 자로 읽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夫蘇巖'의 부소가 진시황의 아들이 아니라 단군의 둘째 아들로 여기서 6년간 수도했다고 것과, {蘇塗經典}에 "[大辯說註]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의 계곡 암상에 神市古刻이 있다.

이글의 뜻은 '桓雄이 출렵(出獵)하여 三神에 致祭하였다'는 말이다."는 등을 근거로 고조선과 연결지어 고조선 시대부터 쓰였다는 가림토 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뭏든 이 각서가 있는 양아리 계곡에 이와 비슷한 고문자가 새겨진 바위가 또 발견되었고, 그 부근 밭 언덕 받침돌에 선사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새 모양의 선각화, 양아리 벽련마을 뒷산마루 바위에서도 고문자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이 각서 또한 선사 시대의 암각화 내지 화상문자로 볼 수 있다.

이 각서는 옛날부터 금산의 마애석각이라고 불러 왔으며, 암각은 주로 직선·곡선·점선 등으로 구성되었다. 남해 지방의 고대 문자의 전래 및 형성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생각된다.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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