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천주교 신자냐 신자가 아니냐의 문제는 정말로 해묵은 논쟁입니다. 다산은 23세 때 친구 이벽(李檗)으로부터 북경에서 들어온 천주교 관계 서적을 받아 읽게 됩니다. 자신의 말대로 그때 이래 7~8년간은 천주교에 매혹당할 만큼 깊이 빠졌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30세 때 일어난 신해옥사(辛亥獄事:진산사건)로 자신의 외종형인 윤지충(尹持忠)과 그의 외종인 권상연(權尙然)이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 참형으로 죽어가자 결연하게 천주교에서는 마음을 끊었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반대파들은 다산의 지위가 오르고 정치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다산은 천주교 신자, 즉 사학도(邪學徒)라고 비방하면서 헐뜯는 일에 열을 올렸습니다.
마침내 다산은 「변방사동부승지소(辨謗辭同副承旨疏)」라는 3천여 글자에 이르는 장문의 상소를 올려 천주교와 자신과의 관계된 전말을 소상히 밝혔습니다. 36세이던 정사(丁巳)년의 일입니다.
젊은 시절 신기한 책을 좋아하는 호기심이 많아 서양의 사설(邪說)을 읽었으며 유교의 별파(別派)라 여기고 흥미로운 내용에 빠졌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문제와 나라에서 엄중하게 금지하는 점 때문에 다시 살펴보고 ‘상륜패리(傷倫悖理)’의 학설이 너무 많아 끝내는 마음을 끊었다는 명확한 주장을 폈습니다. 윤리에 어긋나고 이치에 많지 않은 내용에 자신이 더 이상 관계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소를 올리던 무렵에 매일의 일과를 기록한 「함주일록(含珠日錄)」이라는 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일기의 내용을 보면 그 장문의 상소문이 얼마나 훌륭한 다산의 글솜씨인지 다산이 얼마나 박식한 학문과 사리에 밝은 논리의 소유자인지 넉넉하게 알아보는 자료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반대파이던 당대의 고관대작이나 명문장가들이 한결같이 그 글솜씨의 뛰어남에 감탄하고 진실된 내용에 찬탄을 금하지 않았다는 증빙 자료가 충분하게 열거되어 있습니다.
뒷날 대사성·규장각제학·예조판서·대제학을 지낸 당대의 고관이자 대문장가이던 이만수(李晩秀:1752~1820)가 ‘천고명소(千古名疏)’라고 다산의 상소문에 극찬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산이 천주교 신자에서는 진즉 벗어났음을 알기에 충분하리라 여겨집니다.
박석무 드림
그러나 정치적 반대파들은 다산의 지위가 오르고 정치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다산은 천주교 신자, 즉 사학도(邪學徒)라고 비방하면서 헐뜯는 일에 열을 올렸습니다.
마침내 다산은 「변방사동부승지소(辨謗辭同副承旨疏)」라는 3천여 글자에 이르는 장문의 상소를 올려 천주교와 자신과의 관계된 전말을 소상히 밝혔습니다. 36세이던 정사(丁巳)년의 일입니다.
젊은 시절 신기한 책을 좋아하는 호기심이 많아 서양의 사설(邪說)을 읽었으며 유교의 별파(別派)라 여기고 흥미로운 내용에 빠졌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문제와 나라에서 엄중하게 금지하는 점 때문에 다시 살펴보고 ‘상륜패리(傷倫悖理)’의 학설이 너무 많아 끝내는 마음을 끊었다는 명확한 주장을 폈습니다. 윤리에 어긋나고 이치에 많지 않은 내용에 자신이 더 이상 관계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소를 올리던 무렵에 매일의 일과를 기록한 「함주일록(含珠日錄)」이라는 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일기의 내용을 보면 그 장문의 상소문이 얼마나 훌륭한 다산의 글솜씨인지 다산이 얼마나 박식한 학문과 사리에 밝은 논리의 소유자인지 넉넉하게 알아보는 자료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반대파이던 당대의 고관대작이나 명문장가들이 한결같이 그 글솜씨의 뛰어남에 감탄하고 진실된 내용에 찬탄을 금하지 않았다는 증빙 자료가 충분하게 열거되어 있습니다.
뒷날 대사성·규장각제학·예조판서·대제학을 지낸 당대의 고관이자 대문장가이던 이만수(李晩秀:1752~1820)가 ‘천고명소(千古名疏)’라고 다산의 상소문에 극찬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산이 천주교 신자에서는 진즉 벗어났음을 알기에 충분하리라 여겨집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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