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사(七長寺) ... 궁예, 임꺽정 그리고 암행어사 박문수의 전설이 깃든 천년고찰
경기도 안성의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칠장사(七長寺)는 636년 (신라 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에 혜소국사(慧炤國師. 927 ~ 1054 )가 이 곳에 홍제관(弘濟館)을 짓고 수도를 하던 곳이었다.
고려 현종 5년 (1014)에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이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칠현산,칠장사라는 이름도 혜소국사가 이 절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惡人)을 교화하여 득도의 경지에 까지 이르는 현인(賢人)을 배출하였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원래는 아미산이라고 불렀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仁宗 원년 (1623),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인 영창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원찰(願刹)로 삼음으로써 절이 크게 흥하였다. 영창대군의 묘가 근처에 있다.
그리고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가 전해 내려 온다.
그러나 이후 세도가들이 이 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하여 불태워 버린 것을 초견대사(楚堅大師)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다시 불태웠다.
숙종 30년(1704)에 대웅전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英祖 원년 (1725)에 원통전(圓通殿)을 선지대사가 세웠다.
이 곳 칠장사는 世祖 등 여러 권력자들에 의하여 수차례 불태워지고, 다시 중건되는 파란만장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궁예, 임꺽정 그리고 암행어사 박문수와 얽힌 여러 전설들을 간직하고 있다. 여러 관련 벽화가 이 전설을 전해 준다.
혜소국사가 7명의 도적을 불법으로 교화시키는 모습이다. 그 7명은 현인이 되었고, 山의 이름은 七賢山, 절의 이름은 七長寺가 된다.
원래는 칠장사(漆長寺)이었다.
궁예는 신라 말기 헌안왕의 庶子로 태어나, 권력싸움으로 이 곳으로 피신하여 13살까지 살았던 궁지(宮趾)이기도 하다.
혼란의 시대를 아프게 살아가며 이 곳에서 궁예는 미륵의 꿈을 키운다.
활을 잘 쏘아 이름도 궁예(弓裔)... 이 곳 주위에 궁예가 활 쏘던 활터도 남아 있다고 한다.
임꺽정은 이곳으로 병해대사(昞海大師)를 찾았고,대사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갓바치스님으로 유명하고, 당시 생불(生佛)로 추앙받던.. 그리고 개혁주의자 조광조와 교류하던 병해대사...
임꺽정은 이 곳에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철저한 신분사회의 철폐를 꿈 꾼다.
과거를 보기위해 상경하던 암행어사 박문수는 이곳에 하루를 머문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조청유과를 올리며 정성껏 기도를 드리고 잠을 잔다. 꿈에 문제가 나오고, 그는 과거에 합격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 곳에 들러 조청유과를 올린다.
몽중등과시(夢中登科時).
지금도 입시기도를 많이하는데, 과자를 올린다고 한다.
꺽정불
병해대사는 갖바치 출신으로 조선 중기 명종때에 生佛로 숭앙받던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개혁주의자 조광조(趙光祖)와 두터운 친분을 맺었고, 유명한 임꺽정의 스승으로 여러가지 행적이 전해져 오는데,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통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병해대사가 칠장사에 머물다 입적하였을 때, 임꺽정은 병해대사를 위하여 목불(木佛)을 조성하였는데 그것이 유명한 "꺽정불"이다.
사천왕문(四天王門)....1726년 사간스님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사천왕문은 불법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소도하는 승려와 善人을 돕는 신으로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을 다스리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을 다스리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을 다스리는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을 다스리는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구성되어 있다.
칠장사의 사천왕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진흙으로 빚어진 것이다.
칠장사 창건이래 대웅전은 여러 차례의 전란과 화재로 중건,중수를 되풀이하여 왔으며, 현재의 대웅전은 1703년 (숙종29)에 탄명스님이 중건한 건물이다. 약 300년 전의 건물인 것이다.
오불회 괘불탱화(五佛會掛佛탱화)...괘불(掛佛)은 야외에서 불교 의식을 행할 때 높이 거는 대형 불화로써, 이 괘불은 조선시대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628년 하사한 괘불로써, 현존하는 괘불 중 3번째로 오래 된 것이다. 가로 4m, 세로 6m에 이르며.. (야단법석...野檀法席의 유래)
미륵이 부처가 된 후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개최한 용화화(龍華會)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 생동감있는 필치로 조선후기 불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국보 제296호로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고,사월초파일 하루만 대웅전 앞에 내걸고 야단법석(野檀法席)을 치룬다.
안성 봉업사의 석물입상...봉업사가 폐사된 이후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
원통전(圓通殿) 즉 관음전으로 1725년 (영조 원년)에 선진, 두한스님이 건립하였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곳으로, 그 전각이 그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일 경우 원통전이라 하고, 많은 전각 중의 하나일 경우 관음전(觀音殿)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즉 성불(成佛)하지 않겠다는 관세음보살...가장 친숙한 보살이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 관세음자재보살(觀世音自在菩薩)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관음,관세음,관음보살이라고 한다. 보든 것을 보살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의 입적 이후부터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난파,화재,암살,도둑, 사나운 짐승들에 의한 피해 등으로부터 세상을 지켜주며, 구제할 중생의 근기(根機..정신적 수준)에 맞추어 33가지의 몸으로 세상에 나타난다.
통일신라 초기의 관음신앙은 독존적인 신앙으로서 주로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현세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지만, 고려세대에 들면서 독존적인 대상이 아니라 여러 구세신앙(救世信仰)의 하나로서 위치하게 되며 대중과 가장 친근한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보살(菩薩)이란 부처가 되기 위하여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를 말하는데, 요즘 우리는 여자 신도를 높여 부르는 표현으로 보살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나한전(羅漢殿)...혜소국사가 7인의 도적을 교화시켜 현인(賢人)으로 만든.. 그 7人의 현인을 모신 전각이다. 바위 위에 주춧돌을 놓고 전각을 지었으며 1703년 탄명스님이 건립하였다.
나한(羅漢)이란 원래 석가모니의 직계 제자를 일컬으나 역대의 존경받는 고승대덕(高僧大德)을 함께 일컫는 말이고, 보통 아라한(阿羅漢)이라고도 한다.
나한전 뒷편의 노송(老松)은 나옹선사가 심었다는 나옹송(懶翁松)이다. 수령 600년이 추정된다.
인목대비(인목대비. 1584~ 1632)의 친필 족자이다. 칠언시(七言詩)
늙은 소는 힘을 쓴지 이미 여러 해. 목이 찢기고 가죽은 뚫려 다만 부처의 자비스러운 눈 뿐이로구나. 쟁기질과 써래질이 이미 끝나고 봄의 물은 넉넉한데, 주인은 어찌 심하게 또 채찍질인가?
혜소국사(慧炤國師)의 묘비탑이다.
비의 받침인 귀부(龜趺)와 비신(碑身)이 분리되어 있다. 명당으로 알려진 이 곳을 탐낸 世祖가 비가 서있는 곳의 바로 뒷편에 묘를 쓰려다 보니 碑의 높이가 너무 높아 묘역을 가린다는 이유로 귀부와 비신을 따로 떼어 놓았다고 한다. 世祖는 실제로 대웅전을 불살라버리기도 하였다. 그도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지만.....
碑身의 가운데 부분이 대각선으로 금이 가 있다. 임진왜란때 왜장인 가토(加藤淸正)이 이 곳에 들러 무례하게 굴다가 老僧의 꾸지람을 듣고는 분을 이기지 못하여 칼을 빼 노승의 목을 쳤는데, 노승은 간데 없고 비신이 갈라지면서 붉은 피를 쏟아냈다는 애기가 전한다.
혜소국사의 생애를 기록한 碑文도 비문이지만, 碑의 양면에 새겨진 무늬는 놀랍도록 사실적이고 정밀하다. 여의주를 지닌 두마리의 龍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가득하다.
칠장사의 철로 만든 당간(幢竿)...철(鐵) 당간이다. 당간이란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기 위한 불교 용구인 당(幢...일종의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를 말한다.
14층의 철제 원통 당간지주가 우뚝 솟아있지만, 원래는 28층이었다고 한다. 원통의 지름은 약 50cm이다. 지금 현재의 높이는 11.5m....
당간지주를 지탱해 주고 있는 지주석은 매우 소박하고 단아하다. 지주석 사이에 끼여 솟아있는 이
당간은 풍수설에 관련된 전설을 지니고 있다. 칠장사의 지형이 마치 배모양과 같은 형국이어서 이 당간을 돛대에 비유하여 세웠다는 것이다.
땅도 사람의 몸과 같이 허약한 부분이 있는데, 이 허약한 부분을 보완해주기 위한 방법으로 탑을 주로 세웠는데, 칠장사의 당간이 그런 전설을 지니고 있다.
철당간은 전국에 3곳이 있다. 이 곳 칠장사의 당간, 공주 갑사(甲寺)의 철당간 그리고 國寶로 지정되어있는 청주 용두사지의 철당간이다.
(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청주 용두사지 철간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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