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미국에 동아시아 정책은 있는가? / 이남주

문근영 2010. 7. 3. 06:49
293

 

미국에 동아시아 정책은 있는가?


지난 해 여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년을 시작하면서 미국이 동아시아에 대해 어떤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이곳 생활의 목표의 하나로 삼았었다. 그러나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은 “미국에 동아시아정책은 존재하는가?”라는 초보적인 의문과 씨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전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다이내믹한 지역이고 중국이 언젠가는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대국으로 부상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커다란 이견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일관된 동아시아정책이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시행정부의 경우만을 보아도 동아시아 정책에서 일관성의 부재는 매우 뚜렷하다.

상황논리에 따라 현상관리를 목표로

유럽과의 관계를 보면 이라크전쟁을 둘러싸고 미국은 유럽, 특히 프랑스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으며 현재도 미국과 유럽 사이에 이러저런 마찰이 존재하지만 유럽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미국 세계전략의 기초라는 사실은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다. 중동과의 관계에서도 미국 내에서는 이라크에서의 전략과 이란 핵문제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의 아랍국가와 이스라엘과 동맹관계를 기초로 중동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기본 전략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라크에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워 중동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미국적 가치에 입각한 정치질서를 확산시키는 출발점을 감겠다는 네오콘의 구상이 실패로 돌아간 시점에서 대외관계에서 전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이러한 일관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는 동북아의 경우만으로 보아도 미국이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는 데 축이 되는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조차 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음의 몇 가지 질문들을 생각해보자.

미국과
중국은 협력관계인가 경쟁관계인가? 개별 국가들의 정치체제의 성격을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삼았던 네오콘들이 중국의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행정부는 현실적으로 테러와의 전쟁 및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서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가치와 철학의 공유보다는 단기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 협력관계가 안정적인 동맹관계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양국 사이의 관계에는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미국과
일본 관계는 동맹관계인가?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을 동아시아정책의 기본 축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미일관계도 그리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 최근 역사 문제와 관련하여 주변국가와의 갈등을 증가시키는 일본의 움직임에 불만으로 표출하고 미국의 북한과의 협상을 둘러싼 양국 사이의 마찰이 나타나는 것은 미일관계가 가지고 있는 불안정성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에게 미중관계가 중요한지 미일관계가 중요한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부시행정부는 어떤 비전 아래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가? 최근 부시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다행스러운 변화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서 양국 관계의 장기적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어떤 일관된 논리로 발견하기 어렵다. 최근 북미관계의 변화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의 변화보다는 이라크전쟁에서의 실패 등으로 인한 외교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에 대한 의지와 함께 북핵문제 해결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남아 있다.

이처럼 미국과 동아시아에 대한 정책은 상황논리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내적인 일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서 어떤 일관성을 찾을 수 있다면 동아시아 지역질서에 대한 어떤 미래지향적인 비전보다는 현상관리를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은 앞으로 상당 기간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이념, 역사, 영토적 갈등이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하기 않도록 억제하고, 이들 국가들 사이의 중재자 혹은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고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갈등의 해결자가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추구하는 것은 단기적인 상황관리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의 원천이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갈등에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은 동아시아의 지역협력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게 될 것이고 동아시아와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근원적 긴장을 해결하는 것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 지역협력의 철학과 원칙 가져야

물론 이러한 상황의 출현은 미국만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시아에서는 지역성원들이 공유하는 지역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최근 표면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는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지역협력도 국가이익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어 역내에 존재하는 역사, 영토, 문화적 갈등의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이 동아시아와의 관계를 진취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보다는 현상유지에 초점을 맞추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미국의 체계적인 동아시아정책의 부재는 동아시아의 균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협력의 진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스스로 동아시아의 협력이 미국과의 갈등을 강화시킨다는 우려는 근시안적인 것이며 동아시아 협력의 강화와 제도화는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더욱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현재 북미대화와 6자회담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북핵문제가 단지 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라 냉전의 해체 이후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새로운 안보협력질서를 구축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아 유관국가나 미국은 새로운 질서에 대한 고민을 더욱 구체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즉 6자회담은 동아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상생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도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변화를 단순히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동북아에서 민족주의를 지양하고, 역내와 역외의 새로운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지역협력의 철학과 원칙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존재할 때 동북아 질서의 급격한 변화 과정에서 다양한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이남주
· 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조교수
· 서울대 사회과학대 경제학과 졸업
· 서울대 사회과학대 정치학과 석사
· 중국 북경대 정치학 박사
· 현 계간지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원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