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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의 빌 게이츠 회장, 그는 우리 시대의 우상이다. 그가 6월 7일 하버드 대학을 중퇴한지 34년 만에 명예 졸업장과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졸업식장에서 행한 그의 연설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내년부터 사업에서 완전히 물러나, 2000년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따서 설립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지구상에 만연하는 질병과 가난으로 인한 불평등을 퇴치하는 일에 전념할 것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가 누구인가! 그는 올해로 11년째 연속 미국 최고 부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그가 사업에서 손을 떼고 세계의 불평등을 없애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평범한 기업인으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결단이다. 그래서 졸업식장에서 행한 그의 연설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과연 ‘위대한 개인’임에 틀림없다.
기업이 이윤추구방식으로 가난을 구제? 세계의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 그가 내세운 방안이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이다. 창조적 자본주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그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즉 “기업이 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하고 정치가 표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안”이 바로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심각한 불평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이 세상의 불평등을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위대한’ 발상에 경의를 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이 과연 실현가능한 발상인가에 대해서는 일말의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인류가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한 이래 부닥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부(富)의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이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원리에 의한 무한경쟁을 그 속성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한 개인이나 국가는 가차 없이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수정자본주의 등의 방안이 고안되었지만, 지금도 지구상에는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루 1달라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빈부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빌 게이츠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안” 즉 창조적 자본주의로 이러한 불평등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인데 이 일을 기업이 하자는 것이다. 기업은 이윤의 추구가 유일 최대의 목표이다. 만일 기업으로 하여금 이 일을 하게 하려면,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게 하는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펼칠 사업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가 “창조적 자본주의”로 이 세계의 불평등을 없앨 수 있다면 아마 칼 마르크스를 능가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다.
불평등과 가난을 해소하는 길은 어디에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부(富)의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이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결과라면 이 불평등을 극복하는 방안을 자본주의 밖에서 찾을 법도 하다. ‘자본주의는 영원한 체제인가? 과연 자본주의는 인류가 고안해낸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체제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세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에도 불구하고, 연말연시면 으레 나타나는 구세군의 자선남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투자하는 대기업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에게 돈 한 푼 던져준다고 걸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가 혹시라도, 세상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 사람의 낭만적인 발상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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