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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을 연구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위당 정인보는 그의 애국심에 감탄을 금치 못했음을 설파한 적이 많습니다. 더구나 북한의 학자들도 다산의 애국심이나 우국충정의 간절한 마음에 감탄사를 자주 표현했음도 참고할 이야기입니다. 다산의 뛰어난 애국심에 관심을 집중했던 것이 북한의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대체로 다산 저서의 대부분은 그 책의 저작목적이 나라를 근심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경전을 잘못 해석하여 백성들의 생각이 올바르게 인도되지 못해 세상이 썩어가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다 못하여 경전 재해석의 232권 경학연구서를 저술하였고, 공직자들이 부패하여 나라가 망해가고 있음을 차마 볼 수 없어 『목민심서』나 『경세유표』를 저작하였고, 질병의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없는 마음에서 『마과회통』등의 의학서적을 저술했습니다. 시 한수, 글 한편 어느 경우도 차마 견딜 수 없는 백성들의 참상 때문에 글을 짓지 않을 수 없노라는 것이 다산의 실제 마음이었습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의 타락에 분개하는 마음’(傷時憤俗)을 못 잊고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이 세우며 살아가던 지식인의 모습을 다산은 일생동안 버리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귀양살이 9년째이던 1809년은 전라도에 유사 이래 드문 가뭄이 들었습니다. 다산의 이야기대로 탕임금 이후 이런 흉년이 없을 정도라고 표현했으니 대단한 흉년이 들었던 해입니다.
이 무렵 절친했던 친구로 고관대작이 되어 있던 김이재(金履載)에게 보낸 편지 몇 통은 바로 애국충정에 가슴 태우던 다산의 심정을 읽기에 충분한 내용입니다. “마음속에 서려 있는 우국청정을 발산할 길이 없어 점점 응어리로 가슴에 맺히기에 술에 약간 취한 김에 붓 가는대로 이렇게 심중을 털어놓았으니 밝게 살펴주시오.” 이 글대로 얼마나 마음의 병이 심했으면 친구에게라도 하소연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요.
백성들의 소요, 관리들의 탐학, 이 두 가지를 치유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낸 다산의 애국심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목록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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