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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미디어 교육과 현대사 교육 / 성유보

문근영 2010. 6. 1. 07:17

 

미디어 교육과 현대사 교육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나는 이 말이 매우 근사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것이 수백 년 동안 격언처럼 많은 사람들에 의해 되뇌어진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다. 논리적 상상력 측면에서 나는 매우 순진했던 것이다. ‘존재도 없이 어찌 사고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반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삶은 나의 삶이 아니다

최근 어떤 책에서 이 말은 “중세 가톨릭 봉건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근대 ‘자아(自我) 사상’ 의 출발이다”라는 해설을 읽고 나서야 데카르트가 말한 취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는 삶은 나의 삶이 아니다. 꼭두각시의 삶이다”라는 반어(反語) 속에서 중세와 근대가 명확히 단절되는 것임을 이제야 깨닫다니!

이 깨달음과 함께, 중세와 근대는 연대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문명사적인 구분이라는 깨달음도 다가왔다.

그러므로 유럽문명과 아시아문명의 중세와 근대 구분이 다를 수밖에 없고 유럽문명 속에서도 각 나라별 중세, 근대의 구분이, 아시아 각 나라별로 중세와 근대 구분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근 들어 필자가 품는 생각이다.

왕권신수설과 국민주권, 일원주의와 다원주의, 농업국가 대 산업혁명, 명령과 복종 대 인권사상 등등을 따져보면, 한 개인이나 집단이 근대를 발견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근대사회를 생성시키지는 못한다는 것 또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듯하다.

한 사회가 시민혁명을 통해서 ‘근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 때만 그 사회는 ‘근대’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사회에서의 근대 진입은 20세기 후반, 1970년대 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원주의 군사정권에 대한 상시적 저항과 온 국민적 공감대 그리고 대통령 직선제로 상징되는 1980년대의 시민민주주의 헌법 토대구축 등은 ‘우리 국민 스스로가 쟁취한 근대사로의 진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유아기적 근대, 이 새싹 같은 민주주의가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공을 들여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다.

더 큰 공동체의 공영과 평화를 위해

그중에서도 우리는 미디어 교육과 현대사 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필수 과목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근대, 그중에서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민민주주의적 근대는 시민 각자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할 뿐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인격과 양식을 신뢰한다.

한데 그 시민 각자가 무식하고 선동정치가들의 감언이설에 잘 넘어 간다면, 그 사회는 민주정치가 아니라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성숙·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여론의 광장’ 같은 것이 필수적이다.

미디어 교육은 이 ‘여론의 광장’에 누구나 즐겁게, 또 주눅 들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창출해 낼 것이다.

현대사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교육현장에서는 왜 고대·중세의 우리 민족사에 대해서는 열심히 가르치려 하면서도, 오늘날의 삶과 가장 가까운 최근의 역사를 소홀히 하는가? 현대사 교육에서 국사와 세계사의 구분도 점점 더 무의미해지고 있다. 그러한 구분보다는 세계의 문명사적, 문화사적 역사인식과 변화의 흐름, 국제적 협력과 평화의 문제, 미래에 대한 예측 등의 예지력을 키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미디어 교육과 현대사 교육은 아시아가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면서 평등하게 통합해 나가는 지혜 등을 모색해 나가는 교육장, 훈련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피땀 흘려 쟁취한 ‘인간해방’, ‘자아해방’의 성과물들을 세계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쓰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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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성유보
· 언론인
· 한겨레신문사 초대편집위원장
·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