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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열(班列) 자리에 오를 것을 어찌 바랄 수 있으리오(班子登僊那可羨) 오얏꽃 언덕 한양에 돌아가는 일 모름지기 기약이 없네(李陵歸漢遂無期) 면사(面舍)에서 글 쓰던 그날을 부디 잊지나 마소(莫忘酉舍揮毫日) 경년(庚年)에 떨어진 칼날의 슬픔 차마 말 못하겠네…(忍說庚年墜劍悲)”
지난 해 12월 4일자에 나간 “‘송별(送別)’이라는 이별의 노래”라는 369번째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에서 밝혔던 것처럼, 그 ‘송별’시는 사연도 많지만, 필사본의 문집에는 실려 있으나 활자본의 『여유당전서』에는 누락되어 많이 알려지지 못한 다산의 시라고 설명까지 했었습니다.
시의 원문에 있는 대로, 반자(班子)는 귀양살이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다산의 친구를 상징하는 인물의 호칭이고, 이릉(李陵)이란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귀양살이 오래했던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글자의 뜻대로 풀어서 시를 번역했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요. ‘반열’은 어디서 나온 말이고 ‘오얏꽃 언덕(李陵)’으로 해석하면 무슨 의미가 통하는 시가 되는가요. 유사(酉舍)란 ‘대유사(大酉舍)’, ‘소유사(小酉舍)’라고 칭하여 규장각의 다른 호칭인데, 이것을 ‘면사’라 했으니 도대체 무슨 뜻인지 누가 알겠나요. “경년에 떨어진 칼날의 슬픔”은 또 어디서 나온 말입니까. 경신(庚申)년은 1800년으로 그해 정조대왕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 이야기인데 칼날의 슬픔이라니 의미가 통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최근에 강진군에서 보내준 『강진문화기행』이라는 책을 잠깐 펴보았더니 이런 번역의 글을 실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배포해주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미 필자가 『다산시 정선』(上·下)에서 번역하여 실었고,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라는 책에서도 ‘송별’이라는 시에 얽힌 이야기도 자세히 설명했는데, 오래 전에 어떤 교수가 번역한 엉터리 글이 아직도 보란 듯이 책에 등재되어 나돌고 있으니, 한문의 번역은 이렇게도 어려운가 싶어 답답한 심정 가눌 길이 없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이제 출범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런 번역의 잘못을 제대로 바로잡는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할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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