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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겨울부터 전라도의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시작했던 다산, 8년 가까이 강진 읍내를 중심으로 생활하였습니다. 이른바 「사의재(四宜齋)」라는 읍내의 동문 밖 샘거리 주막집에서 칩거하던 삶에서, 읍내의 뒷산 북산(北山)에 있는 고성사라는 절에서 얼마를 지냈고, 제자 이학래의 집에서도 거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부락의 윤씨들의 초청을 받고, 귤동마을의 뒷산인 다산(茶山)에 있는 윤씨들의 정자인 「다산초당」으로 정착했던 때가 1808년의 늦봄이었습니다.
그윽하고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산속의 초당에 천여 권의 장서를 벗 삼아 본격적인 학문연구에 침잠하며, 세상과 백성들을 건져낼 저술 작업에 온 힘을 기울이던 때에, 수시로 읊었던 다산의 시는 참으로 좋은 시가 많습니다.
7언 율시 16편으로 된 「송풍루잡시(松風樓雜詩)」라는 시가 유독 좋은데, 송풍루는 다산이 거처하던 다산초당 동암(東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소나무 사이에 있는 동암에는 솔바람 소리가 끊이지 않기에 「송풍루」라 이름을 지었나 봅니다.
산에 사노라니 일마다 청빈하지 않음이 없네 山居無事不淸貧 물욕이 없어지자 다만 몸 하나로세 物累消除只一身 타향은 내 땅 아니란 말 누가 믿어 未信他鄕非我土 평지에 살면서도 신선처럼 지낸다네 好從平地作仙人 약 찧는 절구 자주 쓰느라 이끼 낄 새 없으나 頻 藥臼煩無蘚 차 다리는 일 드물어 화로에 먼지 끼었네 稀煮茶 靜有塵 법희(法喜)를 아내 삼으니 그것 참 좋구려 法喜爲妻洵可樂 부처님 말 모두 어긋나도 이 말만은 진짜 같네 佛言皆妄此言眞
산속에서 살다보니 청빈하지 않을 수 없고, 신선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차를 그렇게 즐기지만 아픈 병을 낫느라 약탕기 사용에 바쁘다보니 차 다리는 일이 드물어집니다. 그래서 차 끓이는 화로에 먼지가 낀다 했습니다. 역시 시인다운 표현입니다.
「화엄경」에 “법희를 아내삼고 자비를 딸로 삼는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불법을 듣고 희열을 느낀다는 ‘법희’를 아내로 삼을 수밖에 없던 다산의 처지가 정말로 궁해보입니다. 실용주의적 유교에 확신을 갖던 다산은 불교논리는 신봉하지 않았기에 부처 말씀은 대부분은 틀렸다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불교의 이론에 밝았던 다산의 마음은 알 길이 없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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