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다산포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조영철

문근영 2010. 5. 23. 09:57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다른 사회제도들과 연계된 하나의 불완전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장은 태초부터 존재한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로 인간 본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다른 사회제도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시장과 다른 사회제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제도들이 자생적 질서인 시장을 존중하고 시장친화적으로(market friendly) 맞춰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으로 시장 대 국가라는 학문적 전선이 형성되었고 이에 관한 많은 논쟁이 제기되었지만, 이는 바람직한 논쟁 구도라고 할 수 없다. 시장 대 국가의 논쟁 구도가 애당초 잘못 설정되었다는 것은 시장, 국가 모두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한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전제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보완적 관계의 연계된 제도들이기 때문이다.

시장실패엔 적극 대처, 정부실패는 최소화하는 제도개혁을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시장실패 혹은 정부실패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생산적 성과를 낼 수 없다. 생산적 논쟁이 되려면 우선 시장도 다른 사회제도들에 연결되어 작동하는 불완전한 제도로 독점, 정보비대칭성, 불확실성, 외부성, 공공재 등 다양한 시장실패 요인을 안고 있으며, 국가도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관료주의, 과잉규제, 부패, 공공부문 내부자 담합(insider collusion)과 비효율 등 관치경제에서 이미 보아왔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장실패와 정부실패가 모두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정부실패와 시장실패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장실패에 적극 대처하고 정부실패를 최소화하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불평등, 실업, 노령화 문제들이 점점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국민들은 복지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북유럽모델을 부럽게 바라보면서도 북유럽모델과 같은 큰 정부 모델을 우리의 현실적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관치경제의 폐해를 많이 보았고, 정부 기능을 대행하는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 대해서 매우 큰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민들은 공공부문이 공익을 위한 조직이라기보다는 공공부문 종사자와 이해관계자들의 집단 이익을 위한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역할과 공공부문의 확대를 의미하는 큰 정부모델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가 시장실패를 이유로 국가 개입을 확대한다면 정부실패를 초래하여 개입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민들이 정부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공공부문을 불신하는 한, 북유럽모델과 같은 큰 정부모델은 신자유주의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에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큰 정부모델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공공부문의 투명성과 효율성, 신뢰성, 민주적 통제성을 높이는 공공부문 개혁이 필요하다. 즉 정보 공개, 엄정한 성과관리, 예산 낭비 감시, 지방분권, 개방형 직위 확대, 시민 참여, 시장성이 높은 공공부문의 민영화 혹은 민간이양 등 공공부문과 정부 개혁은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만의 과제가 아닌 것이다.

‘삼성공화국’, 시장실패와 정부실패가 결합된 현상

서구에서는 이념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정부실패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작은 정부를, 시장실패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큰 정부를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실패와 시장실패가 별개의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연계된 문제다. ‘삼성공화국’ 현상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체제가 국가기관의 부패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실패와 정부실패가 결합된 한국사회 현실에서 시장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기득권 옹호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처럼 1원 1표의 시장원리는 언론과 국가기구를 포섭하고 오염시키면서 한국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1원 1표의 시장과 1인 1표의 민주주의는 작동원리와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서로를 견제하는 건강한 긴장관계 속에서 병행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가 확산되고 다른 가치관들을 압도하면서 시장 대 민주주의의 건강한 긴장관계가 무너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동의한다고 해서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천연스럽게 말하면서 수수방관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권력을 시장에 넘겨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조영철
· 현 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고려대학교 경제학박사
· 저서 :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2007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