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혹은 창조적 사고의 달인, 실학자
장 승 구(세명대 교수, 철학)
아웃사이더(outsider)! 나는 실학자를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한다. 실학자 가운데는 재야학자도 있었지만 벼슬자리에 올랐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벼슬을 했건 안 했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실학자들은 아웃사이더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체제의 높은 울타리에 갇혀 살아가는 인사이더들은 새로운 발상을 하기가 어렵다. 기득권을 향유하기에 급급하고 체제의 유지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로부터는 창조적 사고가 나오기 어렵다. 조선시대에 교조적인 정통 학자들은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을 이단(異端)으로 몰아 세웠다. 정통과 이단의 이분법적 사고에 갇힌 사람들은 독창적 발상을 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조선시대 사람들이 땅이 모나고 평평하다고 생각하던 18세기에, 홍대용은 이미 지구가 둥글 뿐만이 아니라 자전(自轉)한다고 생각하였다. 천문학적 사고에 깊이 몰두하고 천문관측기를 만들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인 홍대용은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의 전형이었다. 이 아웃사이더의 눈에 당대의 지식인은 허위의식에 빠져있는 허자(虛子)로 보였다.
기득권과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서는 창조적 발상 불가능
박지원 역시 그 시대의 독특한 아웃사이더였다. 박지원은 도덕주의로 엄숙하게 무장하고 근엄한 표정을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이익의 추구에 여념이 없는 양반 사대부를 풍자하고 조롱하면서 그들이 허위의식으로부터 깨어나도록 문학의 메스를 휘둘렀다. 박지원의 유명한 『열하일기』는 아웃사이더의 시각으로 본 청나라 문물에 대한 감상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청나라 문물을 빗대어서 조선의 답답한 문화를 꼬집은 것이다. 박지원은 조선 지식인들이 성리학의 거대담론에 빠져서 눈앞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지 못하는 우(愚)를 새로운 문체로 고발하였다. 그는 정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였다.
서얼 출신의 박제가도 아웃사이더로서 한몫했다. 박제가는 매일 매일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돈벌이를 우습게 알고 상업을 홀대하던 조선사회에 대해서 경제제일주의를 외쳤다. 이들이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감히 이렇게 무엄하고 발칙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유형원과 이익도 아웃사이더였다. 이들 역시 일찍부터 벼슬길을 단념하고 제도권과 거리를 두고서 농민의 삶의 현실을 자기들의 학문적 문제의식 한 가운데로 받아들였다. 이들에게 학문이란 세상에 자기를 과시하거나 지적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허영의 무기가 아니었다. 민중의 고통과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따사로운 처방전이었다. 아웃사이더였기에 기득권에 물든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갖가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고 권력의 심층부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약용 역시 아웃사이더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가 한창 과거 공부에 전념해야 할 20대 젊은 나이에 서학에 몰두한 것도 아웃사이더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 때문에 온 집안이 붕비박산이 나고서도 겁 없이 그 시대의 정통 학문에 급진적으로 도전하였던 것도 아웃사이더의 용기가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웃사이더의 시각에서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이것이 그의 실학의 창조성의 원천이었다.
외로운 길을 두려워 않는 용기와 하는 일 자체를 즐기는 몰입!
실학을 단순히 실용적 사고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실학자들은 실용적 사고 이상으로 창조적 사고의 달인이었다. 물론 창조적 사고가 실용적 사고와 접목하는 데서 위대한 성취가 이루어진다. 실학자들은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전제(前提)를 과감히 의심하면서 우주와 인간, 자연과 사회를 새롭게 생각하고자 도전했다. 그들의 창조적 사고의 밑바탕에는 아웃사이더 마인드가 깔려있다.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새로운 창조를 꿈꿀 수가 없다. 아웃사이더에게는 외로운 길을 즐겁고 대담하게 걸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창조적 아웃사이더’는 자기가 하는 일의 결과나 대가보다도 ‘지금 하는 일’ ‘자체’를 즐긴다.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몰입’(沒入)! 하는 일 자체를 그저 즐기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의 몰입, 이것이 창조적 아웃사이더의 고유한 특성이다. 우리 사회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면 많은 창조적 아웃사이더가 나와야 한다. 한국사회가 아웃사이더를 품어주고 키워주기 위해서는 더 큰 사회적 관용과 아량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창조성’(creativity)의 시대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도 자기 속에 숨어있는 창조성의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 가끔은 아웃사이더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떨까?
글쓴이 / 장승구
· 세명대학교 교양학부 부교수(한국철학 전공)
· 저서: 『삶과 철학』, 이회, 1996
『정약용과 실천의 철학』, 서광사, 2001
『다산경학의 현대적 이해』, 심산, 2004(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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