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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실용주의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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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들리기로는 실용주의를 지향할 거라고 한다. 나는 실용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가 원칙이나 정신적 가치를 도외시한 성공지상주의나 출세제일주의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이념의 대결이 사라진 역사적 정황을 거론하며 정신의 가치를 내세우는 일이 시대착오인 양 매도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서울에 가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쥐는 왜 잡으려고 하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행동들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행동의 결과로 얻을 이익이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라면 곤란하지 않은가. 실천 없는 원칙주의는 갑갑하지만 원칙 없는 실용주의는 천박하고 외설스럽다. 실용주의의 중요한 동력인 유용성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익이란 하나의 잣대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이익과 공적인 이익이 있고, 그 이익 간에 충돌이 있을 수 있다. 눈앞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이 있고, 그 이익 간에도 충돌이 있을 수 있다. 포괄적인 이익과 부분적인 이익이 있고, 가시적인 이익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이 있으며, 그 이익 간에도 충돌이 있을 수 있다. 당장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담배는 유용하지만,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몸을 해치기 때문에 유용하지 않다. 예술이나 문화는 당장에 눈에 보이는 이익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인생을 유의미하게 디자인함으로써 이익을 준다. 요컨대 어떤 실용주의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신중한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출세와 성공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고, 그리고 부의 획득이 출세와 성공의 척도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요새 그런 경향이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기는 것은, 세속적인 출세와 성공을 이뤄낸 대통령 당선자의 남다른 이력 때문인 듯하다. 그는 대기업의 회장이었고, 서울 시장이었으며, 무엇보다 부자이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먼저 이룬 사람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언제나 세상의 표본이 된다. 지도자의 철학과 처신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새 대통령이 어떤 표본이 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출세와 성공이라는 그의 외양에 사람들의 시선이 오래 머물 때, 그의 실용주의는 자칫 천박해질 수 있고, 잘못된 교사의 손가락질이 될 수 있다. 부자이고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그런 뜻에서 그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인지 모른다. 의사나 변호사가 돈을 잘 벌기 때문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대통령 또한 그러하다. 대통령은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존경을 받는 것이 옳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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