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碑文
박남희
봉긋한 가슴 옆에 서있는 거
그게 비문이야
가슴으로 읽어도 잘 읽히지 않는 게 비문이야
제 몸에 말을 새기고
온몸으로 말을 하려는 것이 비문이야
비문은 편지 같은 게 아니야
바람 같은 거야
상징 같은 거야
구름을 보고 웃는 듯 마는 듯 잠자는 듯 깨어있는 듯
그렇게 백 년을 살아 제 몸의 목소리 희미해져도
제 곁에 풀 베는 소리 아주 안 들려도
봉긋하던 가슴이 편지가 되어도
끝끝내 우뚝 서서
스스로가 경전인 거야, 비문은
―시집『고장 난 아침』(애지, 2009)
▶박남희=경기 고양 출생.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폐차장 근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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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봉긋한 가슴으로 보는 시인의 눈이 아름답다. 그 곁에 서 있는 비문. 백년을 살아도 하지 못한 말, 차마 할 수 없어서 가슴에 새긴 말, 말의 뼈, 말의 씨앗이 비문이다. 그런 비문이 적힌 비석은 우리가 살아서 갖지 못하고 죽어서야 갖는 깃발이다. 나날이 바람이 다녀 갈 것이고, 그 곁에 작은 꽃들이 필 것이다. 산에 오르다 만나는 무덤과 비석은 정답다. 주변은 잔디밭이서 앉아 쉬기에 좋다. 그 곁에 자리를 펴고 친구들과 맛있는 밥을 먹는다. 마멸되어 가는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으며 마음 속으로 말을 건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 안효희·시인 / 국제신문[아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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