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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양주학(揚州鶴) / 송재소

문근영 2010. 4. 30. 09:25

양주학(揚州鶴)


                                                    송 재 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적벽부(赤壁賦)」의 작자로 널리 알려진 송나라 때의 문호(文豪)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녹균헌(綠筠軒)」이란 시가 있는데 지금도 음미해볼 만하다.

     식사에 고기가 없을 수는 있어도                         可使食無肉
     사는 곳에 대나무는 없을 수 없네                        不可居無竹
     고기 없으면 사람을 야위게 하지만                      無肉令人瘦
     대나무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오                   無竹令人俗
     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으나                         人瘦尙可肥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는 법                           士俗不可醫
     옆 사람 이 말을 비웃으면서                               傍人笑此言
     고상한 것 같으나 어리석다 말하지만                   似高還似癡
     대나무 앞에 두고 고기 실컷 먹는다면                  若對此君仍大嚼
     세상에 어찌 양주학(揚州鶴)이란 말 있었겠는가    世間那有揚州鶴

이 시에 나오는 ‘양주학’이란 말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에 손님들이 서로 노닐면서 각자 자신의 소원을 말했는데, 어떤 자는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기를 원하고 어떤 자는 재물이 많기를 원하고 또 어떤 자는 학(鶴)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를 원하였다.

관직과 많은 돈을 갖고, 학을 탄 신선까지? 다 누릴 순 없다

그러자 그 중 어떤 자가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관(貫)의 돈을 차고 학을 타고서 양주의 하늘을 오르고 싶다”라 했다고 한다. 양주는 자고로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난 도시이다. 그러니 이 말은, 양주자사라는 관직과 십만 관의 돈과,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신선이 되겠다는 욕망을 모두 가지려는 것으로, 실현 불가능한 욕심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인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동파의 시에서는 고기와 대나무를 대비시키고 있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관직을 가진 돈 많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람이 동시에 대나무와 같은 고고(孤高)한 품성을 지닐 수 없다는 말이다. 고기와 대나무를 다 가지는 것은 양주학과 같이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대나무를 택하겠다는 것이 소동파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속되고 사람이 한 번 속되면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새 정부의 각료들을 보노라면 소동파의 시와 ‘양주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옛날의 군자(君子)가 대나무를 심어 가까이 하는 것은 대나무의 곧은 기품을 본받고자 함이다. 사실상 대나무와 같이 맑고 곧은 품성은 군자가 갖추어야 할 최대의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덕목은 고기 먹는 일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위 시의 내용이다. 고기를 먹으려면 재산을 모아야 하는데 재산 모으기에 힘쓰다 보면 맑고 곧은 품성을 기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산의 속성이 원래 그러한 것이다.

고기 먹느라 대나무 심을 틈이 있었겠는가?

일국의 장관이면 옛날의 군자에 해당하는데, 새 정부의 장관들은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이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 많은 것이 험이 될 수는 없지만, 일반 서민들이 위화감(違和感)을 느낄 정도의 재산이라면 문제가 없지 않다. 어느 여성 장관 후보자의 경우와 같이, 유방암 검사에서 ‘깨끗하다’는 진단을 받은 기념으로 아파트 한 채를 살만큼 많은 재산을 모았다면 어느 겨를에 맑고 곧은 품성을 닦을 틈이 있었겠는가? 아마도 이들은 대나무 심는 일보다 고기 먹는 일에 더 많은 공력을 들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서도 깨끗한 마음으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세상에 어찌 양주학이란 말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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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 <다산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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