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언비어의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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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거나 글로 쓰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벌하고 정부의 공식적인 거짓말에 의구심을 표시하면 ‘불신풍조 조장’으로 금지시켰다. 그러나 언론통제가 강화될수록 일명 ‘카더라 통신’이라고도 불리는 유언비어의 지하유통망은 더욱 노선을 확장하였다. 이러한 유통과정의 변화는 급기야 메시지의 내용과 형식에도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 단순한 구비전승이 아닌 몸짓과 재담, 노래, 그림 등으로 확산되었고, 이것이 바로 7, 80년대 민중문화의 백화제방을 낳았던 것이다. 진실은 영원히 가두어 놓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억압하면 할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확산된다는 것을 이 시대의 문화사는 증명한다. 나는 요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보면서 새로운 문화적 활력을 느낀다. 그것은 1970년대와 80년대 민중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지만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화적 에너지의 분출이다. 돈에 눈이 먼 기성세대는 ‘경제 살리기’라는 속임수에 넘어가 임금님의 벌거벗은 몸을 못 보았지만, 순수한 10대의 눈에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이 보인 것일까. ‘미친 소고기 너나 먹어’라는 여학생들의 외침은 온갖 궤변과 거짓말로 주렁주렁 치장한 권력의 알몸을 만천하에 폭로한다. 통쾌하고 신선할 뿐이다. 입으로는 국민을 섬기겠다며 실제로는 통치의 대상으로만 보는 3공 5공식 정부와 누구 앞에서도 할 말은 다하는 2천년대 신세대의 대결. 진실을 괴담으로 낙인찍고 경찰과 교사, 언론을 동원하여 학생들을 억압하려는 집권자들의 태도는 구태의연한데, 10대 여학생들의 집단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와 거침없는 표현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격렬한 구호나 화염병이 아니라 부드러운 촛불과 재치있는 수다가 넘친다. ‘님을 위한 행진곡’ 대신 윤도현의 ‘아리랑’이 불리고 운동권 명망가들의 논리적이고 상투적인 연설 대신 민초들의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발언이 줄을 잇는다. 불법집회 참가자들을 처벌하겠다는 경찰의 위협에 나 잡아가라고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 권력과 유착한 신문들의 뻔뻔한 거짓말을 단숨에 격파하는 정보력, 개그맨을 능가하는 순발력은 새로운 민중문화의 지평을 열어젖히고 있다. 문화란 바로 꿈틀거리는 생명의 몸짓이다. 이러한 문화적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권력이 언론을 옥죄고 진실을 유언비어로 몰아붙이는 한, 민중문화의 동력은 계속 충전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편집주: 이 글은 거리시위와 연행이 발생했던 주말 이전에 기고된 글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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