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춘추(春秋) / 김광규

문근영 2009. 12. 24. 10:34

춘추(春秋)


-김광규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

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병술년 봄을 보냈다

힐끗 들여다본 아내는

허튼소리 말라는

눈치였다

물난리에 온 나라 시달리고

한 달 가까이 열대야 지새며 기나긴

여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갈 무렵

겨우 한 줄 더 보탰다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시간의 부드러운 손』(문학과지성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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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시「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쓴 김광규 시인이 한양대학교 정년퇴임에 맞춰 새 시집『시간의 부드러운 손』을 상재했다. 우리 시대의 소시민적인 속물근성과 현대 물질문명의 반생명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온 기존 그의 다른 시집들과는 이번 시집의 빛깔은 좀 다른 듯하다. 새 시집에는 자신의 내면과 인생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시편들이 여럿 눈의 띈다. 시집 맨 첫머리에 놓여 있는「춘추」도 그렇다. 봄과 가을이라는 춘추(春秋)는 또 세월, 연륜이 높은 어른의 나이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위 시에는 이런 여러 가지의 뜻이 복합적으로 함께 사용된 듯하다. 봄, 여름, 가을이라는 세 계절의 오랜 시간에 걸쳐 씌어진 김광규의 시「춘추」는 참 짧고 간결하다. 시는 단 두 행으로 이루어져있다. 봄과 가을을 노래한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와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가 그것이다.  그 중간 11행으로 된 2연의 내용으로 봄과 가을 사이에 일어난 일과 시작(詩作)의 과정을 보태고 있다. 무척이나 재미있고 소중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내용이 무심한 시종(始終) 두 행의 시구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시인의 시작(詩作) 고뇌와 아내의 시큰둥하는 대꾸, 그리고 신산(辛酸)한 우리네 세상살이의 이야기까지. 서로 같이 자리를 해야 생명의 빛을 발하는 그런 관계다. 시「춘추」는 김광규 시인의 무르익은 시의 행차(行次)가 아닐 수 없다. 연단(鍊鍛)의 과정을 어느 만큼이나 거쳐야만 이런 말씀을 펼쳐놓을 수가 있을까? 필사(筆寫)해 놓은 공책만 자꾸 뒤적이며 입만 벌리고 있을 일이 아니다. 공부를 해야겠다.

-이종암(시인)

 

<경북매일신문> 4월 27일(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