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손창기] 어둠을 모디린다

문근영 2009. 12. 21. 17:58

어둠을 모디린다*


-손창기

 

 


눈대중으로 모를 모디린다

모내기 후 포기 빠진 곳, 할머니는

분명 어둠의 빈틈을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물처럼 촘촘히 모디리고 나서야

햇빛이 들고, 바람이 일고, 거울이 된다

고단한 하루의 무게로 내려앉은

발자국을 스르륵 덮어버리는 햇빛,

포기 사이에 뜬 제 그늘까지 동여맨다

바람은 기우뚱한 모를 세우며

팽팽하게 오와 열을 당겨 놓기도 한다

순간, 무논이 젖빛 물거울로 떠오른다

물거울에 담겨졌던 미루나무 그림자, 산그늘

끝까지 껴안고 있는 저 울음들

연한 그림자 속, 할머니가 발을 떼자

진초록으로 옅은 어둠이 다져지고 있었다

뒷짐 지고 마을로 드는

할머니의 환하고 굽은 등이, 저 달이다

엉성한 밤하늘에

촘촘한 별들 하나씩 모디리고 있었다.

 

 


*모디린다: 모 사이 빠진 곳을 보식(補植)한다는 뜻의 경북 방언.

 

-『달팽이 聖者』(북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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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후배 시인 손창기의 첫 시집『달팽이 聖者』가 발간되었다. 시작(詩作)의 긴 과정에서 그가 흘린 땀과 노고를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참으로 기쁘고 축하할 일이다. 그의 첫 시집에는 신산했던 가족의 삶을 비롯하여 흔히 변두리로 통용되는 고달프고 주목받지 못한 생(生)에 대한 주목과 그런 삶을 보듬는 따스한 연민의 서정으로 넘쳐난다. “모내기 후 빠진 곳”을 모디리는 저 할머니의 손길이 농부의 마음이요, 생명을 세우는 일이다. 이 거룩한 일에 자연인 햇빛과 바람이 가세하여 “포기 사이에 뜬 제 그늘까지 동여”매고 “기우뚱한 모를 세우며/팽팽하게 오와 열을 당겨 놓”는다. 그 순간, 무논이 즉각 반응하여 커다란 물거울로 떠오른다. 하루의 힘든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굽은 등과 조응하는 것은 하늘의 그믐달이다. 하늘의 달이 이제 밤하늘의 모판을 모디리고 있는 것이다. 모디리는 공간의 이러한 우주적 확산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 사물의 미세한 인과(因果)의 포착으로 말씀의 밭(詩)을 잘도 만들고 있다. 손창기 시인이 갖는 이 ‘모디리는’ 사랑과 생명의 손길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더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종암(시인)

 

[경북매일신문] 5월 14일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