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尹東柱,1917~1945) 북간도 동명촌에서 교회 장로의 장손으로 출생. 연희 전문에서 문과를 수료한 후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43년 귀향하기 직전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복역 중 1945년 2월 16일 29세로 옥사했다. 해방 이후 그의 아우 윤일주씨에 의해 도일 전 자필로 쓴 19편과 유고시 30편이 모아져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발간되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
1939년 3월 12일에 완성된 산문시. 순이에 대한 그리움을 ‘눈’, ‘발자욱’, ‘꽃’ 등의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감미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순이의 상징이나, 떠나는 이유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굳이, 홀홀이 떠나는 순이의 행위를 비유한 ‘잃어버린 역사’를 단초로 하여 순이를 ‘조국’으로 해석하는 역사주의적 관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 역시 시 전체의 이미지가 그것을 쉽게 수용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한편, ‘잃어버린 역사처럼 (순이가) 가다’라는 표현은 윤동주 시인의 독특한 비유이다. 일반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원관념이 추상적일 경우, 구체적인 매재(보조 관념)를 빌어와 원관념을 구체화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 시인은 거꾸로 비유를 한다.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자화상)’, ‘사랑처럼 슬픈 얼굴(소년)’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함박눈이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내린다.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는, 창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마음 속의 추상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방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는 순이가 떠난 후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으로, 다음에 이어지는 ‘벽과 천정이 하얗다’와 ‘방 안에까지 내리는 눈’에서, 하얀 색의 이미지를 ‘외로움(떠난 임으로 인한 슬픔과 충격-온통 하얀)’으로 인식하게 해 준다. 이렇게 마음의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고, 마음 속에 순이가 떠나 가는 길(지도)이 그려 진다.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그 길이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덧 화자는 마음 속 순이의 조그만 발자국을 따라 간다. 하지만 펑펑 쏟아지는 눈이 순이의 발자국을 덮어버리고 만다.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나 화자는 그리움의 길을 그만 두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 발자국 자리마다 그리움의 꽃을 피워 일구고 그 꽃 사이로 순이를 따라 가겠노라 말한다. 맨 마지막의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의 ‘눈’은 내면의 그리움을 표상한다.
‘창 밖’과 ‘창 안’ 그리고 ‘창 밖에 오는 눈’과 ‘창 안(마음)에 오는 눈’의 대립 구조에 의해 안타까움의 정서가 고조되고 있으며, 시각적 이미지의 효과적 배치에 의해 펑펑 쏟아지는 그리움의 눈꽃이 독자의 마음 속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작품이다. 주제는 ‘이별의 안타까움과 간절한 사랑’.[상징사전]
[참고: 현실적인 해후를 방해하는 눈을 제시하고(?) 이 눈이 하냥 내리리라는 생각을 통해 충족되지 않는 영원한 갈망(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고 말한 평자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