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대하여

좋은 시는 정말 좋고 나쁜 시는 정말 나쁘다/ 오탁번

문근영 2009. 10. 12. 12:02

좋은 시는 정말 좋고 나쁜 시는 정말 나쁘다/ 오탁번

 

몇 해 전 {오탁번 詩話}를 쓰면서 맨끝에서 내렸던 굉장한 결론 즉, '좋은 시는 정말 좋고 나쁜 시는 정말 나쁘다'라는 말이 사실은 결론이 아니라, 영원한 '서론'이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좋은 시란 정말 무엇일까? 요즘의 많은 시인들이 양산해 내는 작품들이 과연 우리 영혼의 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앞에 무수히 나타나고 있는 '시'들이 과연 젊은 날의 우리들이 밤새워서 추구했던 진정한 시와 얼만큼 근접해 있는 것일까?
올해 K대학의 문학상 공모에서 당선된 어느 학생의 시를 보면서 나는 이러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국화빵 찍어내듯 타성에 젖어서 만들어 내는 시인들이 시를 읽으면서 느낀 곤혹이 풋풋한 풋내를 풍기는 학생의 시를 대하자 이내 '시인'으로서의 자괴감과 맞물려 배가되는 기분이었다.

햇살이 뜨거운 손으로 오븐을 만지면
들이키는 긴 한숨도 노릇노릇 익어간다
식빵의 속살이 수은주처럼 부풀어 오른다
바람 찬 연살 같이 휘어지는 빈 갈비뼈들
빵을 자를 듯 오븐의 살갗에 칼금을 긋는다

아이는 숨통을 트겠다는 듯 입을 벌린다
이랑을 따라 터져 나오는 한잎한잎 푸른 박수소리
바람은 긴 터널을 지나간다 아이는 금세 투명해진다
후우! 불면 몸이 부푸는 넌 빈 봉투야
안에선 푸르고 싱싱한 상치 냄새가 나지
돈걱정이나 하구 아이는 손시린 학원비 봉투 앞에서
말이 없다 몇 달째 밀린 화인의 도장 자국처럼
부어오른 편도선, 긴 목뼈 근처 통증을 어루만진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요 아픈 것만 믿지요
한숨을 쉬면 아이의 몸은 간유리처럼 희미해진다
울지 마라 안쪽이 젖으면 세상이 굴절돼 보이니까
풀을 찾아 헤맨 초식공룡들처럼 빙하기가 끝나면
둥근 뼈만 남겠죠 아이의 몸이 금세 축축해진다
숨결까지 물방울로 맺히는 눈물의 이슬점
넌 언제나 안쪽이 젖어 있는 비닐하우스야

들판 가득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는 애벌레들
하루에도 수십 번 입을 열었다 닫으면서
목구멍까지 차오른 한숨으로 관악기를 분다
눈물이 맺히는 온도로 텅 빈 희망을 조율하는
지금은 비닐 하우스 문 열어둘 시간이야
잊지마! 빵의 맛은 오븐의 온도와 습도에 달려 있어
-이기언(독문과 2), [비닐하우스]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 미소가 들 정도로 알맞게 농익었고 눈치 안 보고 자기의 느낌을 펼쳐 나가는 신선미도 좋지 않은가. 그냥 보고 지나치게 되는 '비닐하우스'를 세계와 자아의 교감을 통하여 화해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따뜻한 시적 인식은 정말 개성적이다. 젊은 학생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요설과 난폭한 역설 그리고 이른바 '해체'라는 망령을 벗어나서 수줍은 듯이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는 이 학생의 시적 인식이야말로 시인들이 배워야 할 기본이 된다. 解體라는 말은 문학의 본질이나 형식을 마구 허물어 버리는 것이 아니다. 문학의 형식을 이루어 나가는 또 다른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집을 건축하는 것보다 집을 허물어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지니고 있는 문학 장르에 대한 인식과 눈에 보이는 사물의 실상을 과거-현재-미래의 시간개념이 아니라 미래-현재-과거의 역순으로 이해하고 처음-중간-끝 또는 상-중-하의 시간과 공간을 뒤집고 비틀어서 이해한다는 것은 사물의 형상을 무턱대고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해체'라는 것은 이러한 새로운 시적 인식의 이름이지 무작정 시를 파괴하여 무화시켜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美文만을 위한 상투적인 비유나 몇 개 집어넣으면 시가 된다는 한심한 생각과 마찬가지로 短文도 채 되지 않는 글을 시라고 착각하는 시인들은 위의 학생시를 잘 읽어봐야 할 것이다. 短文도 단문이 되려면 主述관계에 놓여야 하는데 하물며 시가 시적 상상력의 주술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超越도 禪도 다 심오한 주술관계 속에서 그 난해성과 신비감이 생성되는 것이다. 현실의 구속과 관습을 초월도 하지 않으면서 초월적인 시를 쓰는 척하거나 선과는 상관도 없이 속악하게 살면서 시적 기교의 부족함을 호도하기 위해 선적인 시를 쓰는 척하는 시인들은 아주 없는 것인가.
시는 그 시인의 세계관이며 인격이라는 먼지 묻은 고전적 고백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으며, 서툴지만 갓 구워낸 빵처럼 향기로운 학생의 습작시에서 '좋은 시'의 참모습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