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배를 매며/ 장석남

문근영 2009. 5. 16. 12:30

 

배를 매며 
 

 
아무 소리도 없이
무슨 신호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깜짝 놀라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배를 매보는 일은 이 세상에서의 참으로 드문 경험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와 닿는다


사랑은,
우연히 호젓한 부둣가에 앉아 있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그리고 그 근처의 물결까지도 함께
매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
 
 


詩 :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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