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박물관 소식
-분교에 봄 오다
이 문 재
트럭 집칸에 오른다
졸업식 하러 본교 가는 길
열 살 넘어까지 오지에 살았다니
그것만으로도 눈물겹구나
앞산 뒷산 앞강물 뒷강물
꽃망울을 터뜨리려는지 한움큼씩
더운 것들을 한데 모은다
세상 뿌옇다
낯설지만 동창생 되었구나
이름도 모르는 본교 아이들과 헤어져
먼 집으로 돌아가는 길
대처로 나갈 아이들은 주머니에서
미래를 꺼내 만지작거린다
올해엔 신입생이 없는 분교 운동장에
봄볕이 가득, 쫑알거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미래로 달음박질치려는 아이들을
다시 불러 중국집으로 들어간다
머리를 그릇에 박고 후루룩
짜장면 한 그릇을 후딱 비운다
너희들이 미래다
이 오지가 끝끝내 미래다
너희들은 곧 돌아오리라, 라고 말하려다가
고량주 한 병을 더 시키고 말았다
꽃들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봄이 봄 밖으로 돌아나가고 있었다
<시작메모>
평생을 섬진강에서 사는 김용택 형이 제자들 동시를 엮어 책으로 묶었다.
<학교야, 공차자>라는 동시집, 분교 제자들 졸업선물이었다. 그 동시집 뒤에 발문 비슷한 글을 몇 줄 적다가 가슴이 미어졌다. 이 시는 그 발문을 토대로 한 것이다. 봄이 봄 밖으로 돌아나가는 사태가 보인다. 이 봄을 또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 벌써 고단하다.
**"문학사상" 1999년 4월호 중
***산꼴 태생인 내게 이 시는 너무도 피부깊이 스며 온다. 읍내 40리, 친구들은 중학교로 가고, 밭을 매다가 문득 바라보는 먼 신장로로, 까맣게 교복 차림으로 토요일 오후를 올라오던 친구들, 그 때 그 눈물이 지금 다시 솟는다면 나는 이미 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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