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너의 아저씨(생 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동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분들은 '그 동무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 같은 걸 채집하느냐?'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 그 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느냐?' 이것이 그분들의 묻는 말이다. 그제서야 그 동무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그분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내질 못한다. '1억 원짜리 집을 보았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거 참 굉장하구나!' 하고 감탄한다." 지금 우리 둘레에는 숫자 놀음이 한창이다. 두 차례 선거를 치르고 나더니 물가가 뛰어오르고, 수출고가 예상보다 처지고, 국민 소득이 어떻다는 등, 잘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숫자의 단위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스리는 사람들은 이 숫자에 최대 관심을 쏟고 있다. 숫자가 늘어나면 으시대고, 줄어들면 마구 화를 낸다. 자기 목숨의 심지가 얼마쯤 남았는지는 무관심이면서,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매달려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가시적인 숫자의 놀음으로 인해서 불가시적인 인간의 영역이 날로 위축되고 메말라 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똑같은 물을 마시는데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든다는 비유가 있지만, 숫자를 다루는 그 당사자의 인간적인 바탕이 문제다. 그런데 흔히 내노라 하는 어른들은 인간의 대지를 떠나 둥둥 겉돌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어린 왕자! 너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버섯'이라고 했지? "그는 꽃향기를 맡아 본 일도 없고 별을 바라본 일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 본 일도 없어. 더하기 빼기 밖에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 그러면서도 온종일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하고 뇌고만 있어. 그리고 이것 때문에 잔뜩 교만을 부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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