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텅빈 충만 중에서

문근영 2009. 1. 29. 17:15

법정 스님의"텅빈 충만"中에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산마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속 뜰에서 맑은 수액(樹液)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난다.
혼자서 묵묵히 숲을 내다보고 있을 때
내 자신도 한 그루 정정한 나무가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으면,
그저 넉넉하고 충만할 뿐 결코 무료하지 않다.
이런 시간에 나는 무엇엔가 그지없이 감사드리고 싶어진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에서 말고 잔잔한 이런 여백이 없다면
내 삶의 탄력을 잃고 이내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자신이 쏟아놓은 말은 누군가가 가까이서 듣고
있는 줄을 안다면 그렇게 되뇌거나 마구 쏟아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명심하라.
누군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건 뜻을 담은 말이건 간에
듣는 귀가 바로 곁에 있다.
그걸 신이라고 이름붙일수도 있고,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불성(佛性)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곧 그 사람의 속뜰을 열어 보임이다.
그의 말을 통해 겹겹으로 닫힌 그의 내면세계를
알 수 있다.
모처럼 꽃이 피어나고 새잎이 돋아나는
싱그러운 신록의 숲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면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충만할 텐데 사람들은 그럴 줄을 모른다.
일상에 때묻고 닳은 자신을
그 어느 때 그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겠는가
입 다물고 귀기울이는 습관을 익히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중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말과 생각이 끊어진 데서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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