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대하여

바람은 논리적으로 불지 않는다.ㅡ서정주론 ㅡ / 김영수

문근영 2009. 1. 21. 10:53

바람은 논리적으로 불지 않는다
서정주 론



 미당은 천여편의 작품으로 거개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했다. 이 오케스트라 속에는 한국인의 풍류기질에서부터 역사가 길러낸 페이소스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악기가 뿜어내는 대향연을 감당하였다.
 이것은 한국 예술사 내지 문학사에서 전무한 대연주이다.
 미당 타계 후 많은 논객들은 그에게 <단군 이래의 시성>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려 놓았다.
 서정주의 문학에는 보드렐르가 있고 노장(老莊)이 있으며 북의 소월과 남의 영랑이 있고, 지상의 난초가 있는가 하면 ‘동천’의 달과, 그 사이의 <매서운 새> 등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만상이 함께 어울려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서정주야말로 지식이나 감각의 조합을 넘어 옛날을 불러내서는 새 얼굴을 만들어 내고 남이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할 때> 서정주는 낯선 것을 낯익게 한다.
 미당은 이미 약관 20대에 소위 <생명파>라는 <사람 속으로> 파고들었다.
 일부의 지적처럼 당시 고작해야 언어의 감각이나, 경향파의 시 또는 모더니즘이 유행하던 시기에 미당은 ‘자화상’에 표출된 것처럼 그의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을 늘어뜨린 / 병든 숫캐마냥 헐떡거리며> (‘자화상’) 시를 쓰는 고열한 생명파 시인이었다.
 그는 초기에 이미 인간의 피를 찾고 원죄의식을 직감하였다.
 그리고 그 원죄의 생명은 배로 땅을 기면서 <짐승스런 웃음>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자꾸 달아나고
  울타리는 마구 자빠트려 놓고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석류꽃 나무 나무
  하늬바람일랑 별이 모두 우습네요
  풋풋한 산 노루떼 언덕마다 한 마리씩
  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굽이 강물은 서천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맞춤은 오오 몸서리친
  쑥잎을 지근지근 이빨이 허허옇게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러라 울음같이
  달더라.
― 서정주, ‘입맞춤’전문

 이 ‘입맞춤’은 지상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인 욕망과 충동의 표상이다. <이빨이 허허옇게 짐승스런 웃음>이나 그 울음같이 달디단 웃음은 모든 생명의 육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미당의 생명 탐색의 문학은 끊임없이 허물을 벗으면서 변신해간다.
 차음 본 생명의 원형은 모든 사물과 교접하면서 결국 삼라만상의 교향악으로 심화 확대되어 간다.
한마디로 서정주의 문학세계는 천지인 삼재에, 산천초목에, 그 어느 동식물 하나 이질로 소외되지 않고, 이승 저승 동서고금 할 것 없이 한마당에 어울려 춤추고 노래한다.
 말하자면 미당의 문학은 인산 세상에 더 말할 나위 없는 어울림이고, 교감이고, 상생이고, 예술의 본향 그 자체이다.
 인간끼리는 고사하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 그 어느 것과도 어울리면 꽃을 피운다.
 이질의 뿌리가 없이 카니발이고 융변이고 삼투 협화이다.
 그의 문학은 사통팔달로 열려 있다.
 그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그의 시는 바람이 몰고 다녔다. 둔갑이고 요술이다. <내가 / 돌이 되면 // 돌은 / 연꽃이 되고 // 연꽃은 / 호수가 되고 // 내가 / 호수가 되면 // 호수는 / 연꽃이 되고 // 연꽃은 / 돌이 되고>(‘내가 돌이 되면’)하는 변화 무쌍한 신바람이다.
 그러면서 벽이 가로막으면 문을 내고, 설한풍 앞에서는 <괜찮다>고 다독인다.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들이 모두다 안끼어 드는 소리―

  큰놈에겐 큰눈물 자죽, 작은 놈에겐 작은 눈물 자죽,
  큰 이얘기 작은 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거리며 안기어 오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 서정주, ‘내리는 눈발 속에서’에서

 이러한 미당에게 만고풍상은 삶의 한 여정이었다. 그런 인생사를 미당은 객관적 상관물인 <국화>로 노래하니 그것이 굽이 굽이 한스러운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국화는 하늘로 천년학이 되어 날아간다.

  천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나른다.

  천년을 보던 눈이
  천년 파닥거리던 날개가
  또 한번 천애에 맞부딪노나

  살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
  초목도 울려야 할 설움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 구나
  보라, 옥빛 꼭두서니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을 보자
  누이의 어깨 너머
  누이의 수들 속의 꽃밭을 보듯
  세상을 보자

  울음은 해일
  아니면 크나큰 제사와 같이

  춤이야, 어느땐들 골라 못추랴
  멍멍히 작은 목을 제 쭉지에 묻을 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땐들 골라 못추랴

  긴 머리 자진 머리 일렁이는 구름 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곁을 나른다.
― 서정주, ‘鶴’ 전문

 이어령이 미당의 고희 기념 강연에서 <피가 해체되어 붉은 빛은 지상의 꽃이 되고 비가 되어 저 바위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피가 해체된 물은 하늘로 상승해서 구름이> 되니까 <땅의 언어가 하늘의 언어로 부활>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이처럼 미당의 <화사>는 국화가 되고 그 국화는 천둥소리를 타고 학으로 날아간다. 불혹의 나이에 쓴 위의 시 ‘학’은 달관한 눈빛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하게 고뇌스러운 한국인의 험한 산길을 학이 나르듯 물살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한국인의 철학을 노래하고 있다.
 일본의 야나기(야나기)가 한국인의 서러운 여정을 운학(雲鶴)으로 표현하면서 남의 나라에 시달려 정처없이 흐르는 연약한 학으로 비유했을 때 미당에게는 그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얼굴은 그것이 아니었다. 5천년 역사에 곡절이 많았다 해도 한국인은 오히여 우라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왔다.
 이러한 한국인의 풍모를 미당은 한국인의 넉넉한 품에서 찾는다. 그의「질마재 신화」에서 보여주는 단군신화를 비롯한「삼국사기」「삼국유사」등에서 채굴한 각종 한국인의 얼굴은 왜소하지도 뻔뻔스럽지도 않고 차라리 유연하였다. 어째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니다.
― 서정주, ‘禪雲寺 口’전문

 이 시의 일화로 어느해 미당이 선운사에 갔을 때 어느 주막에서 취중에 한 예쁜 주모를 본다. 그 후 6․25 전쟁을 치루고 난 뒤 다시 가보았더니 주막은 잿더미로 변하고 주모도 없는데 그 잿더미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반기더라는 것이다. (송하선의 「서정주 예술 언어」참조)
 이러한 일화와, 시인(서정주)의 l적 심상에는 인간은 인간 홀로가 아니라는 것, 특히 한국인은 세상 만상과 함께 하는 동기연지(同氣連枝)라는 것이 노출되어 있다.
 말하자면 큰 시인 미당은 큰 무당처럼 천지신명과 상통하면서 세상것을 떡주무르듯 주물렀고, 자신(인간)의 한계상황과 그 찰나적인 인생의 실존을 우주의 섭리에 묻고 화답하였다.
 인간같이 작은 것이 대우주에 살고, 찰나적인 생명이 영원을 살면서 행복할 수 있는 지혜를 물었던 것이다. 거기서 미당은 천지에 잘난 것 못난 것이 없고 똥오줌 항아리에서도 하늘을 보는 거울이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키치의 문화까지 일구어 냈다.

 질마재 上歌手의 노랫소리는 답답하면 열두발 상무를 젓고, 따분라면 어깨에 고깔 쓴 중을 세우고, 또 면  머리에 뙤약볕 같은 놋쇠 요령 흔들며, 이승과 저승을 뻘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안 하는 어느 아침에 보니까  上歌手는 뒤깐 똥 오줌 항아리에서 똥오줌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 왜, 거, 있지 않아.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 오줌 항아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붕도 앗세작파해 버린 우리네 그 참 재미있는 똥 오줌 항아리, 거길 明鏡 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망건 속으로 보기좋게 밀어 넣어 올리는 쇠뿔 염발질을 점잖하게 하고 있어요.
 明鏡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
― 서정주, ‘上歌手의 노래’ 전문

 질마재 상가수는 <열두발 상무를 젓기도 하고 놋쇠요령으로 이승 저승을 오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때로는 똥 오줌 항아리를 들판에 옮기기도 하고 그 똥 오줌 항아리는 명경처럼 맑아서 하늘의 별과 달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이처럼 미당은 가장 더러운 배설물에서 가장 성스러운 하늘과 별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