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남강 근처 /이정홍 (진주시 신안동)
가만히 눈을 뜨고 촉석루를 쳐다본다.
슬픈 비사秘史 가리듯이 내려앉는 산 그림자
피 묻은 의암 언저리 비봉산도 다가선다.
밤의 뒷문 소리 없이 잠긴 빗장 설핏 풀어
강물 위엔 수천 불빛 비늘처럼 일어나서
금물결, 논개가 끼던 가락지로 반짝인다.
나의 살, 나의 뼈에도 눈물겨운 말이 돋고
그토록 오랜 세월 불씨 안고 지켜온 성
임진년 그 장렬함이 이끼처럼 돋아난다.
제 가슴 회초리 치는 저 강물소리 아득하다.
무희의 흔들리던 손대 끝 댓잎처럼
귀 닳은 역사책 속의 밤바람이 차갑다.
-------------------------------------------------------------------------------
[당선소감]
-진주성벽 아래 시조 가마솥을 걸어놓다
기축년 햇귀가 부챗살처럼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무심코 받은 전화기 속의 목소리,
와락! 당선이라는 중압감이 몰려옵니다.
문득,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서1구西1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 그 소년시절 저는 경남일보 신문배달원 이었습니다.
윤전기에서 갓 찍혀 나온 신문의 잉크 냄새가 항상 그립습니다.
청소년 시절을 닥치는 대로 먹고 사는 일에만 혼을 빼앗겼습니다.
흙탕물 얼음길을 낡은 검정 고무신으로 헤진 가슴을 도닥거리며 뛰고 솟고라지기가 일쑤였습니다.
눈물의 얼음이 박힌 제 발바닥을 떠올립니다.
그 얼음이 이제야 녹아 짜르르 전율로 다가 옵니다.
경남일보사와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게 또다시 열립니다.
진주성벽 아래에 시조의 가마솥을 걸어 놓고 있습니다.
돌 틈 사이의 푸른 이끼처럼 영감이 지펴지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먼저, 저에게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께 큰 절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경남일보사의 미래가 진주 남강처럼 영원하길 빕니다.
아울러, 민족시사관학교 윤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항상 제 곁을 지켜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동고동락하는 K형, 도타운 우정으로 뭉친 우리 삼총사
승엽이와 길주, 침술의 대가 승환이, 그리고 주위 분들께 그 동안 진 빚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비봉산 그늘에 잠들어 계십니다.
오늘 따라 부모, 형제, 가족이 떠오르고 뭉클한 감정을 감내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모님 정말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를 아는 많은 분들께도 오늘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약력-
1956년 경남 진주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 국립경상대학교 학사관리과 재직.
(심사평)
숱한 과제를 안고 새해는 밝았다. 신춘문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변함없이 높다.
한국시조 문단을 개척해나갈 유능한 신인을 만나기 위해 응모 작품의 봉함을 개봉한다.
초롱초롱한 작품을 마주 대한다.
새해 새아침을 조명할 작품 선정에 들어가면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이다.
시조가 지향하는 바는 개성과 정형의 의상을 갖춘 서정성에 있다.
상상을 함축하고 여과하여 운율미를 살리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구성하였으며 어떻게 들어냈는가.
장(章) 의식과 연시조의 배열의도가 분명한가.
서술어 수식어의 절제와 은유(隱喩), 참신성은 어떤지.
대강 이렇게 해서 처음도 끝도 신선한 감동의 진폭 여하가 자리를 정할 것이다.
첫째 번 정독에 들어갔다. 작품 수준이 작년보다 향상되었다.
앞에 예시한 바에 의하여 ‘매미 울음소리’‘남강 근처’ ‘화절령 넘으며’ ‘겨울 과원’ ‘아름다운 도전’ ‘옹기를 만나다’ 등을 뽑았다.
그리고 다시 정독한 끝에 최종심에 ‘남강 근처’ ‘매미 울음소리’ ‘화절령 넘으며’ 세 작품을 올렸다. ‘
‘남강 근처’는 의암과 논개의 영혼을 조명하는 남강, 잠들지 않는 남강의 역사현장을 아프도록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시어의 구사력이 대단하다. 율감의 긴장미를 더하는 전개수법도 돋보인다.
‘매미 울음소리’는 지난 여름의 뜨거웠던 시대상을 안으로 다스린 은유의 기량이 뛰어난 작품이다.
‘화절령 넘으며’는 침묵의 산을 온 몸으로 깨우며 인생의 성찰을 가꾸어가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넘치는 상상을 잘 절제하고 있다. 함께 낸 다른 작품도 연관 지어 보았다.
올해의 당선작은 ‘남강 근처’로 정하였다. 감동의 무게를 더하였다.
여기서 제외된 작품은 다른 기회에 빛을 보리라 믿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드리며 한 길로 정진하시기를 바란다. -김교환, 시조시인-
'202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 신춘문예 왕중왕 전 시조부문 결과 발표 (0) | 2009.01.08 |
---|---|
2009 신춘문예 영주일보 시조 당선작 (0) | 2009.01.06 |
2009 신춘문예 농민신문 시조 당선작 (0) | 2009.01.06 |
2009 신춘문예 서울신문 시조 당선작 (0) | 2009.01.06 |
2009 신춘문예 창조문학신문 시조 당선작 (0) | 2009.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