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낯설은 것이 머리와 가슴을 치고 갈 때가 있다. 아버지의 얼굴이, 아침상 위에 놓여 있는 숟가락이, 어머니의 굵은 손마디에 껴있는 빛바랜 반지가, 그 반지의 작고 깊은 상처들이, 스윽 가슴을 베고 지나갈 때가 있다. 그 낯선 두려움과 동행하는 서늘한 그늘! 그게 바로 시다. 어이! 하고 부르기에는 말문이 막히고, 그냥 지나가게 놔두기에는 다시는 못만날 것 같은 그 순간, 눈은 밝아지고, 가슴은 우물처럼 깊어지고, 내 아랫도리는 없는 듯 허공에 뜬다. 시는 내 몸보다 더 확연히 살아서 나에게 온다. 나는 방금 쓴 시의 이전과 이후에서, 늘 새로이 태어난다. 시인은 새로운 시로 부활하며, 새로운 시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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