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시정신과 세계성으로서의 시 / 박주택 (시인, 경희대 교수)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듯 시를 기다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만큼 행복도 큰 법이다. 도대체 시가 무엇이기에 매어 있단 말인가?
멀게는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이나 연합서클 시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통 시가 아니면 그 무엇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 지금 시는 어쩔수 없이 생애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오지 않는 시를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일이란 철저히 세상 속으로 들어가 숨는 일이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자나 깨나 시가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고자 할 때 우선 시를 불러오는 일이 필요하다 . 시를 불러 오는 일이란 몸과 마음을 시 속에 바치는 일일 것이다 . 그러나 세상에 찌든 몸과 마음을 시 속에 투여하기도 어렵지만 무엇보다도 시가 받아 주지 않는다 . 이럴 때에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지 않아 마음이 딴데가 있는 것처럼 돌아서 있는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 이를 위해서는 시집을 읽는 것이 좋다 . 시심을 불러 일으킨다고나 할까 . 시집을 읽으면서 시를 상기하며 시의 환심을 사는 것은 시가 돌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다. 책을 읽고 시집을 읽고 잡지에 발표된 시들을 읽으면서 시 쓰기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시를 쓸 때에 먼저 고려하는 것은 그동안 머릿속으로 쓰고자 했던 주제들을 꺼내는 일이다. 평소 이러저러 한 것을 쓰겠다고 생각해 두었던 것들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말에 그칠 공산이 크다. 기억이란 믿을 게 못되기 때문이다. 가령, 이것만은 꼭 써보자 했던 것이 막상 쓰려고 할 때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메모는 필수적이다. 대체로 수첩 사이에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지만 그것이 없을시에는 종이나 명함 뒤 심지어 냅킨에 까지 메모를 해둔다. 대화나 여행 중에 혹은 술에 취한 중에 떠오르는 단상들은 반드시 기록해 둔 뒤 그것을 시를 쓸 때 가장 우선으로 고려한다. 메모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주제인지, 문장인지, 단어인지, 이미지인지, 상징인지 일일이 암호를 그 옆에 기록해 두면 떠오른 상황을 나중에 상기하는 데 용이하다.
시를 쓰면서 고려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시적 정의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예컨대 시란 쉬운 언어로 감동을 주어야 한다든지, 오랜 퇴고의 과정을 거친 뒤 발표해야 한다든지 하는 대체로 편향적 정의로부터 떠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쓰는 일이다 . 시정신은 시를 바르고 굳건하게 그리고 당당한 것으로 이끈다. 마치 지조 있는 글처럼 시는 자신과 일치 해야만하는 동시에 정신의 위용을 함께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시를 쓸 때의 마음가짐은 시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우리시에서 부족한 것도 바로 시정신 , 곧 철학의 부재이다 . 시가 철학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일상에 매몰되어서도 안된다 .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는 깊은 사유가 미와 균형감을 이루며 현대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수사보다는 주제 의식, 단순성보다는 입체성을 띌 때 시는 보다 새로울 것이라는 것이 오랜 생각이다.
다음으로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우리 시가 우리 시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시로서 우리시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라는 말은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시켰을 때 내지는 세계적인 것을 세계화시켰을 때 훨씬 유용 한 말일 것이다 . 단순히 한국적인 상황에 천착했을 때 그것은 지역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우리시의 맹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 이 안목이 없이는 결코 세계적인 시로 거듭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 끊임 없이 세계시를 읽고 경향을 파악하고 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이래서 필요하다 . 더욱이 세계 시를 둘러싸고 있는 담론을 이해하고 문학사를 숙지하는 것 역시 우리시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시를 기다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드물다 . 그러나 쓰기 시작할 때와 쓰고 난 뒤의 행복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다 . 따라서 시를 쓸 때는 언제나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 그럴 때만이 주제 의식도 심원해질 뿐만 아니라 미적 성취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 출처 : 시와시학 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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