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대하여

시의 드러냄과 긴장 / 이정록

문근영 2008. 12. 21. 15:30

 

민간인(民間人)

                    김종삼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境界線)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시인학교, 신현실사, 1977>

이 시의 1연은 완벽한 드러냄으로 팽팽한 긴장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의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1947년 봄 심야라는 시간에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라는 공간까지, "사건25시"의 도입부처럼 잘 안내하고 있다. 작자는, 나는 이 시를 통해 이걸 말하고 싶다고 용기있게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좋은 시는 단도직입의 직언을 던질 줄 안다. 돌아가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는 약한 시인은 모른다. 이게 고단수다. 독자를 단번에 끌고 들어가는 단순한 통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게 어디 단순한 통로이기만 한가? 2연으로 오면 사공은 한반도 역사의 중심으로 노를 저어간다. 그 긴장의 경계에 초병의 총구와 아이의 울음을 병치시킨다. 보이는 것만이 시가 아니다. 나는 이 밤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칼날의, 서슬퍼런 춤이 느껴진다. 오싹해진다. 일가족의 안전을 위해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끝내는 아이를 밤바다에 집어던지는 침묵의 공포가 이 시에 피끓고 있다. 하나님도 이순간, 숨이 턱 막힐 것이다. 태초부터 존재하는 단 한번의 우주의 질식이 이 시에 있다. 이 시 속의 카메라는 눈을 깜박일 수도 없이 얼어붙는다. 배경 음악이 필요하다면 스피커마저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리라. 민간인이라니! 살아남은 우리가 민간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