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물방울 집 / 이인주

문근영 2008. 11. 14. 01:42

물방울집 / 이인주


풀잎에 맺힌 이슬을 받거나
처마끝 낙숫물이 궁글린 물방울을 헤아리고 있으면
맑고 투명한 물방울집 속에 들어앉아
내가 둥근 알을 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부풀린 물방울로 지은 집 한 채가 있어
둥글고 온전한 방 속에 몸을 푸는 내가
안과 밖이 잘 어우러진 창의 굴곡을 훑고 지나갈 때
마음과 달리 나는 물방울집 밖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좀체로 뚫고 들어갈 틈입을 주지 않는 물방울집은
갓 구워낸 빵처럼 부드러워 보이나
온힘을 다하여 밀치고 들어가려 하면
그만큼의 반동으로 나를 미끄러뜨리며
단단한 경계가 반짝 일어서는 걸
그때 알았다

 

아무렇게나 굴러 살점이 발겨진 뼈 하나를
기둥처럼 붙들고 중심 잡을 수 없을 때
울림 큰 바람의 세계는 중심이 텅 비워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면벽하는 정신 하나 투명한 연잎 위
이슬로 맺히려 하고 있을 때
풍경은 그때서야 가장 깨끗한 경계를 세워두는 것이 아닐까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맑고 투명한 물방울의 집은
갈고 닦은 뼈로도 깨뜨릴 수 없는
부풀린 생각의 모서리를 보기좋게 다듬은
둥글고 단단한 물방울다이아처럼 빛나는데

다시 생각의 중심을 비우고
부딪쳐 생채기난 몸집 둥글게 말아
구심력을 잡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둥글고 단단한 물방울집 한 채가
내 안에 들어와 있음에
흠칫 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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