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나는 휘파람의 어미예요 / 김경선

문근영 2008. 11. 14. 00:59

나는 휘파람의 어미예요 / 김경선

 

 

  현기증과 손잡고 몇 바퀴를 돌고 돌았는지 몰라요 아직도 리허설 중이죠 지쳐 쓰러질듯 휘파람을 불지요 드문드문 관중을 향한 휘파람이 쓸쓸해요 자꾸 휘파람도 따라 울어요 끝도 없는 허방에 커다란 입을 오므리고 무대 밑 낯선 말들은 쫑긋거리는 물고기 떼 같아요
 
  욕망의 배란일을 놓치고 상상임신을 했어요 잠자리에 들면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를 낳고 싶었죠 구름은 우기를 몰고 와서 밤새 허기지도록 나를 불어댔어요 천둥 번개 밤새 우르르 쾅쾅 휘파람을 가르치려 했어요 헛배가 불렀지요 휘파람은 태어나지 못하고 헛구역질만 해요 분장실에서 휘파람의 그림자를 머리핀처럼 꽂고 마른입술에 바르고 거울 속에 숨은 휘파람을 불러내 치장을 했어요 구름이 몰려와 입술에 손가락을 대면 바람에 찔린 구름의 손가락에서 빗방울이 일제히 뛰어내려요 빗속에 휘파람이 갇히고 무지개는 뜨지 않아요

 

  휘파람이 모자라요 풍선처럼 바람을 잔뜩 먹어 봐요 입술을 오므려 봐요 혹시 무지개가 구름 옆구리를 찢고 나올지도 몰라요 처음부터 구름과 무지개는 하나 였어요 당신 아세요? 배 아파 낳은 휘파람, 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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