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4월 / 정영애

문근영 2008. 11. 14. 00:56

4월 / 정영애

    

사랑을 한 적 있었네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연애가 부활되었네 

 꽃이 지듯 나를 버릴 결심을 
그때 했네 
모자란 나이를 이어가며 
서둘러 늙고 싶었네 
사랑은 황폐했지만 
죄 짓는 스무 살은 아름다웠네 
자주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었네 
활활 불 지르고 싶었네 
나를 엎지르고 싶었네 
불쏘시개로 희박해져가는 이름 
일으켜 세우고 싶었네 
그을린 머리채로 맹세하고 싶었네 

나이를 먹지 않는 그리움이 
지루한 생에 그림을 그리네 
기억은 핏줄처럼 돌아 
길 밖에 있는 스무 살, 아직 풋풋하네 
길어진 나이를 끊어내며 
청년처럼 걸어가면 
다시 

필사적인 사랑이 시작될까 두근거리네 
습지 속 억새처럼 
우리 끝내 늙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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