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詩 당선작

2020년 조선 일보 신춘 문예 시부문 당선작- 고명재

문근영 2020. 1. 2. 00:02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바이킹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고명재 


1987년 생. 영남대국문과 박사 수료. 동 대학 시간강사 재직. 



심사평

오르내리는 바이킹의 공포와 인내, 우리 삶 비춰


  언어의 소통을 본질을 지니고 있다. 시의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의 한 단면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그것을 독자와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에 본심 심사대상이 된 시의 경우 소통하기 어려운 시가 많았다. 인간의 삶은 존재하지 않고 언어만 존재해서 그 언어의 유기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시의 그릇에 제각기 놓인 추상적 관념적 언어를 통해 언어의 난무(亂舞)를 보았다. 삶의 내용이 내포되지 않은 시의 언어는 그 의미를 잃는다. 의미를 잃고 형식만 남음으로써 소통이 불가능한 시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한국 시의 위기다. 그러나 최종심까지 논의된 몇 몇 작품은 그런 위기감을 다소 진정시켜 주었다.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서는 소통 가능한 언어로 쓰였으나 폭우에 떨어진 사과의 의미에 보다 깊은 사색의 비유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초행’은 화장한 유해를 들고 산을 오르는 과정을 대화체로 쓴 작품이다. 그러나 과정에 치우친 나머지 그 과정에서 추구해야할 죽음의 의미에 대한 독자성이 부족했다. “다시는 안 볼랍니다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차 한 대가 쌩 하니 지나가는 겁니다” 등에서는 유해를 모시는 진정심에 의구심을 잃었고, “검은 봉투에 흰 가루를 품에 꼭 안고”에서는 ‘진심으로’는 진심에 대한 양의성이 있었다. ‘진심’을 진심(眞心)으로 이해했을 때는 시의 생명력이 있었으나 사람이름으로 파악했을 때는 평범한 일기 같은 산문성이 두드러졌다. 당선작 ‘바이킹’은 한 남녀가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면서 한순간 겪게 되는 고통과 공포를 통해 우리 삶의 절망과 희망이 교직되는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재적 삶이 바이킹을 타는 행위로도 재해석되었다. 바이킹이라는 배를 타는 안식과 기쁨보다는 배가 좌우방향으로 높이 오르내릴 때 경험하게 되는 위험과 불안, 고통과 인내 등이 바로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실과 같다는 의미가 암유돼있다. 당선을 축하한다. 당선자는 한국 현대 시의 미래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 문정희 시인.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