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詩 당선작

2020년 한국경제신문 시부문 당선작- 김건홍

문근영 2020. 1. 1. 20:40
김건홍
[2020 한경 신춘문예] 詩 당선작 '릴케의 전집'

그 집의 천장은 낮았다.
천장이 높으면 무언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그 집에 사는 목수는 키가 작았다.
그는 자신의 연인을 위해 죽은 나무를 마름질했다.

목수보다 키가 큰 목수의 연인은 붉은 노끈으로 묶인 릴케 전집을 양손에 들고 목수를 찾아갔다.책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커다란 관이 돼버렸다고
목수는 자신을 찾아온 연인에게 말했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지도 모르겠다고 연인은 답했다.

해가 가장 높게 떴을 때 마을의 무덤들이 흐물흐물 무너져 내렸다.

목수는 연인이 가져온 책 더미를 밟고 올라서 연인과 키스를 했다.
목수의 입에서 고무나무 냄새가 났다.       

 

 

심사평

송재학 시인
손택수 시인(노작 홍사용문학관 관장)
안현미 시인
왼쪽부터 안현미·송재학·손택수 심사위원

왼쪽부터 안현미·송재학·손택수 심사위원

올해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은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준이 높았다. 문학적 상투성을 답습하지 않은 새로움을 보여주면서 시적 압축미가 돋보이는 작품을 뽑고자 했다. 특히 고전적인 세계를 다룰 때도 그 고전적인 것이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작품을 뽑고자 했다.

당선작을 놓고 끝까지 겨룬 것은 송은유와 김건홍 작품이었다. 송은유의 ‘화분의 위의(威儀)’는 언어를 자기식으로 감각 있게 형상화하는 능력이 수준급이고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대의 풍경들을 그릴 줄 안다는 점이 매혹적이었다. 반면 부분 부분 문학적 상투성을 극복하지 못한 표현들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었다.숙고와 토론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한 김건홍의 ‘릴케의 전집’은 간결하고 압축적이면서도 비의와 상징성이 풍부하다는 점, 열린 서사 구조가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 동봉한 시편들의 편차마저도 금방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이게 했다. 앞으로 한국 시의 새로운 지층의 결을 보여주리라 기대하며 흔쾌하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아울러 모든 응모자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